파업중인 미작가노조(WGA)의 피켓시위 위협으로 13일 쇼 형태 대신 기자회견식으로 진행된 제6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현장인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 호텔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나는 골든 글로브 시상 주최측인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으로서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이날 하오 6시부터 시작되는 기자회견보다 2시간 빠른 하오 4시께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직격탄을 때린 WGA 회원들 대신 10명의 국제 연극·무대 피고용인연합(IATSE) 회원들이 호텔 주차장 입구에서 “파업 빨리 끝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영화 TV 제작 현장의 전기기술자 및 간호사 등 여러 직종의 피고용인들로 세트 간호사 캐런 코바식은 “WGA 파업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고 취재하는 내게 하소연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스타들의 광채와 팬들의 아우성으로 번쩍거리고 북새통을 이뤘을 레드 카펫 장소인 호텔 입구는 적막강산이었다. 너무나 조용해 초현실적 기운을 느낄 지경. 회견장인 인터내셔널 볼룸 입구에서 입장 티켓을 받았는데 티켓에 하오 2시30분에 칵테일, 3시30분에 샴페인 디너 그리고 5시부터 시상식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시상식 때 마시고 먹은 칵테일과 점보 생새우가 아쉬웠다.
식장 안은 전 세계 57개국에서 온 TV 취재진과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그리고 동료들 및 홍보사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지난해만 했어도 조지 클루니나 앤젤리나 졸리가 앉았을 무대 정면 앞 테이블에 자리를 정했다. 내 옆에 앉은 동료로 91세의 나이에도 정정한 아니타 바움이 “잇 스팅스”(구린내 나)라고 쇼가 취소된데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만나는 동료들마다 “슬픈 일이다” “이건 잘못 됐어”라고 푸념했다.
원래 기자회견은 골든 글로브 쇼를 독점 중계하는 NBC-TV가 독점 방영키로 됐었으나 막판에 판권료가 문제가 돼 HFPA가 단독으로 이것을 떠맡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모든 미디어에 문호를 개방, HFPA를 보다 광범위하게 홍보하는 효과를 본 셈이다.
회견 1시간 전인 하오 5시까지도 무대장치를 위한 망치소리가 뚝딱거리는 가운데 취재할 스타가 없는 미디어들은 서로 저희들끼리 취재를 하는가 하면 동료 회원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다.
하오 5시30분께 갑자기 식장 안이 시끌시끌하더니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 날 최종 승자를 발표할 사람 중 하나인 TV 연예쇼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의 여사회자 메리 하트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고 있었다. 하트가 이 날 최고의 스타가 되는 역설적인 순간이었는데 하트도 후에 수상자를 발표할 때 “백만년에 단 한번이라도 내가 이 자리에 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날 최종 승자는 CNN의 ‘쇼비즈 투나잇’과 ‘E!’ 및 ‘엑스트라’ 등 인기 TV 연예 쇼 진행자 6명에 의해 발표됐다. 그것이 이 날 발표회견에서 가장 쇼다운 쇼였다. 자리에 앉아 취재를 하면서 지난해에 기라성 같은 스타들로 광채와 열기를 발하던 쇼를 생각하자니 갑자기 주위에서 한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최종발표 순서인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은 호르헤 카마라 HFPA 회장(사진)이 했다. 전쟁 중 비극적 로맨스를 그린 ‘속죄’(Atonement)가 발표되고 회견은 35분만에 끝났다. 회견이 끝난 뒤 나와 몇몇 동료들은 참석자들을 위해 제공된 샴페인을 마시며 ‘속죄’가 최우수작이 되기엔 약한 영화라며 의견을 나눴다. 스타 없는 회견을 치른 데다가 무던한 영화가 최우수작으로 뽑힌 것에 내내 속이 상했다.
이튿날 ‘속죄’의 감독 조 라이트와 코미디/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남자 주연상을 받은 ‘스위니 타드’(Sweeney Todd)의 감독 팀 버튼과 자니 뎁 등으로부터 감사 e-메일이 날아왔다.
라이트는 “나의 팀의 작품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준 HFPA에 감사를 표한다”고 적었다. 버튼은 “뉴스를 듣고 매우 행복했다”면서 “상은 많은 재주 있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업적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며 감사했다.
HFPA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뎁은 “내게 이런 영예를 안겨준 친애하는 HFPA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면서 “나만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가요 천재인 팀과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의 영화를 인정해 준 것에 기쁨이 넘쳐흐른다”고 즐거워했다.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철저히 깨달은 것은 스타 없는 쇼는 허무할 정도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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