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무자년으로 쥐띠의 해다. 쥐는 재해를 예지하는 영물이자 풍요와 근면을 상징한다고 해서 옛날 우리나라에선 쥐신까지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통상 쥐 하면 음험하고 간교하고 더럽고 또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표리부동하고 남의 눈치만 보는 사람을 일컬어 좋게는 서생원 나쁘게는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미국에서도 변절자를 랫(rat)이라고 부른다.
나는 지금도 쥐를 생각하면 옛날 부산 피난시절의 셋방살이가 떠오르곤 한다. 방 천장에서 사는 쥐들이 밤이면 유난히 뛰어다녀 잠을 설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야웅 야웅”하며 고양이 우는 소리를 흉내 내거나 벼개를 천장에 집어 던지면 쥐들은 잠시 쥐죽은듯이 있다가 금방 다시 초등학교 운동회 때 경주하는 꼬마들처럼 뛰어다녀 내 약을 올리곤 했었다. 쥐 중에 딱 하나 밉지 않은 쥐가 있다면 그것은 미키 마우스. 그러나 미키의 여자 친구 미니 마우스는 촌스러워 사랑이 안 간다.
영화에서 쥐 같은 인간 모습을 기차게 표현한 배우가 더스틴 호프만이다. 호프만은 오스카작품상을 탄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 맨해턴의 서푼짜리 거리의 사기꾼 ‘래초‘ 리조로 나온다. ‘래초‘(Ratso)는 쥐새끼를 뜻하는 듯한데 호프만은 감지 못해 포마드를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는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채 한쪽 다리를 저는 폐병환자로 나와 텍사스 깡촌에서 올라온 몸짱 존 보이트를 등쳐먹었다. 호프만의 모습이 막 시궁창에서 나온 쥐 같았다.
인간 쥐떼들로 멋있었던 일당이 1950~60년대 라스베가스 쇼 무대를 주름잡았던 ‘랫 팩’(Rat Pack).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그리고 피터 로포드와 조이 비숍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영화와 TV와 쇼 무대를 섭렵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었다. 이들이 나온 영화 ‘오션의 11인’은 최근 들어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핏 주연의 신판으로 만들어져 2편의 속편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쥐가 제목에 포함된 영화들은 몇 편이 있긴 하나 대부분 타작에 지나지 않는다. ‘랫보이’(Ratboy)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오래 동거하다가 하룻밤 새 쫓겨난 배우 손드라 로크의 감독 데뷔작. 반인 반쥐 모습의 소년을 발견한 여자가 이 소년을 쇼거리로 삼아 횡재할 생각을 하는 내용의 드라마다. 토니 커티스와 데비 레널즈가 공연한 코미디 드라마 ‘랫 레이스’(The Rat Race)는 풍운의 꿈을 품고 뉴욕에 온 음악가와 무희의 로맨스를 그렸다.
이들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것이 1966~1968년 ABC-TV에서 방영된 30분짜리 전쟁 액션물 시리즈 ‘랫 패트롤’(The Rat Patrol)이다. 2차 대전 중 3명의 미군과 1명의 영국군으로 구성된 순찰대가 기관총이 장치된 개조한 트럭을 몰고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면서 독일의 롬멜 전차군단을 공격하고 교란하는 박진감 있는 쇼였다.
진짜 쥐들이 나와 사람 잡는 바람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데도 재미 만점인 영화가 ‘윌라드’(Willard·1971·사진)다. 진짜로 무서운 이 영화의 주인공 윌라드(브루스 데이비슨)는 소심하고 고독한 평범한 사무원. 그가 우연히 한 쌍의 쥐를 얻어 이들에게 각기 벤과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극진히 돌보면서 인간과 쥐 간에 깊은 정이 맺어진다. 그리고 사이코에 가까운 윌라드는 벤과 소크라테스에게 살인술을 가르친다.
윌라드의 첫 간접 살인목표는 자기를 못살게 구는 회사 상사 앨(어네스트 보그나인). 윌라드의 지시를 받은 벤과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동료 쥐떼들을 동원, 앨을 무참하게 물어뜯어 죽인다. 그런데 윌라드가 애인(손드라 로크)을 사귀면서 벤과 소크라테스를 푸대접하자 똑똑한 벤이 쥐떼들을 동원, 윌라드에게 가혹한 복수를 한다.
수많은 쥐떼들이 “찍찍”거리며 목표물인 인간을 공격,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는 장면이 너무 끔찍해 몸과 마음이 모두 졸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기 나온 벤과 소크라테스 등 수십마리의 쥐들은 모두 훈련자로부터 연기 수련을 받은 쥐배우들이다.
벤은 빅히트를 하면서 이듬해 ‘벤’이라는 이름의 속편이 나왔지만 전편만 못하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젊은 마이클 잭슨이 부른 감미로운 주제가 ‘벤’이다. 쥐해에 쥐처럼 살라고 말하면 욕이 될까 아니면 복이 될까.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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