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돼 한해의 베스트 10을 고르면서 겪는 경험은 내 신체의 표피를 뚫고 들어와 가슴 속에 잠겨 있는 영화 혼을 뒤흔들어 놓거나 잡고 놓아주지 않는 영화 10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 바로 이것이다”라고 감동한 영화는 고작 3~4편에 지나지 않곤 한다.
올해 내가 가장 좋아한 영화는 소품 뮤지컬 ‘원스’(Once-18일 DVD 출시·사진). 음악과 로맨스를 아름답게 조화시킨 아일랜드 영화로 거리의 악사와 역시 음악가인 꽃 파는 여인간의 관계를 꾸밈없이 소박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운드 트랙을 하나씩 사서 듣기를 권한다.
올해는 좋은 뮤지컬들이 많이 나왔는데 내가 좋아한 것들이 많아 ‘원스’와 함께 이들을 종합해 나의 넘버원으로 뽑았다.
비틀즈의 노래로 드라마를 엮은 환상적인 ‘우주를 가로 질러’(Across the Universe)와 1980년대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리드싱어 이안 커티스의 생을 그린 ‘컨트롤’(Control) 그리고 디즈니의 즐거운 ‘인챈티드’(Enchanted) 및 존 트라볼타가 뚱보 엄마로 나온 ‘헤어스프레이’(Hairspray) 등은 모두 훌륭한 뮤지컬들이다.
가수 밥 딜란의 생애를 6명의 배우가 시대에 따라 묘사한 ‘나는 거기 없어’(I’m Not There)는 본격적인 뮤지컬은 아니지만 난해하면서도 뛰어난 뮤지컬 드라마라고 해도 되겠다. 또 명랑한 풍자극 ‘워크 하드’(Walk Hard)와 배우 존 투투로가 감독한 ‘로맨스와 담배’(Romance & Cigarettes)도 나를 즐겁게 해줬다.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인 ‘스위니 타드’(Sweeney Todd)는 피범벅이어서 수시로 눈을 가리고 봤으니 좋아할 리가 없다. 이어 내가 좋아한 순서별로 탑 10을 적는다.
▲‘악마가 네 죽음을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두 형제가 부모가 경영하는 작은 보석상을 털려다 일어나는 비극과 살인과 후유증을 희랍 비극식으로 처절하게 그렸다. 노장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로 필립 시모어 하프만, 이산 호크, 알버트 피니 및 마리사 토메이 등의 연기가 눈부시다.
▲‘피가 있을 것이다’(There Will Be Blood)-20세기 초 중가주 석유 밭을 무대로 펼쳐지는 석유와 권력과 돈과 종교에 관한 사납고 거칠면서도 장엄한 대하극. 주연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오스카상을 받을 확률 95%.(영화평 28일자 ‘위크엔드’판)
▲‘채털레이 부인’(Lady Chatterley)-영국 작가 D.H. 로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프랑스 영화. 성불구 남편을 둔 부인과 이 집의 건장한 사냥터지기의 육과 영을 다한 사랑이 사실적이면서도 꿈처럼 아름답다. 가슴에 비수가 와 박히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늙은이들의 땅이 아니다’(No Country for Old Men)-조엘과 이산 코엔 형제 감독의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탐욕에 관한 현대판 서부극. 황량한 텍사스를 무대로 마약자금을 놓고 도주와 추격과 살육이 이어진다. 앙상블 캐스트인 조쉬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및 타미 리 존스 등의 연기가 훌륭하다.
▲‘연 날리는 소년들’(The Kite Runner)-대부분 비평가들이 무시했지만 나는 좋아했다.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우정과 속죄와 구원의 드라마로 동명소설이 원작.
▲‘잠수기와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한쪽 눈꺼풀을 빼고 전신마비가 된 프랑스 패션지 보그의 편집국장의 실화. 참담한 얘기가 오히려 영혼을 고양시키는 감동적 작품. 미술가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환상적이요 아름다운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새비지 가족’(The Savages)-갑자기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게 된 평소 사이가 뜸하던 두 남매의 코미디 드라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얘기를 사실적이면서 우습게 그렸는데 이 역시 우울한 얘기지만 정신이 맑아진다. 남매역의 필립 시모어 하프만과 로라 린니의 연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시코’(Sicko)-만드는 영화마다 논란을 일으키는 기록영화 감독 마이클 모어가 미 의료체계의 비능률·비효율성을 비판하고 풍자했다. 보노라면 한심한 미 의료체계에 기가 막히고 화가 나 웃음이 나온다.
열번째 영화로는 런던을 무대로 한 러시안 마피아의 잔인한 스릴러 ‘동쪽의 약속’(Eastern Promises-25일 DVD출시)과 조지 클루니 주연의 기업 살인스릴러 ‘마이클 클레이턴’(Michael Clayton) 그리고 브래드 핏이 주연한 사념적 웨스턴 ‘비겁자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등을 묶었다. 베스트 10은 대부분 현재 상영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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