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담아주는 얄팍한 공짜 백의 화려한 변신
백화점 부터 중저가 체인까지
튼튼하고 아름답게 디자인 경쟁
몇백만달러 투자 몇개월 작업도
그동안 미국 소매업계에서 손님이 구입한 물건을 상점에서부터 집까지 담아가지고 갔다가 쓰레기 통에 버리면 그만인 것으로 간과되어 오던 얄팍한 공짜 샤핑백이 호화롭게 변신하고 있다. 고급 백화점부터 중저가 체인에 이르기까지 소매점들이 모두 나서 가장 튼튼하면서 패셔너블한 샤핑백 만들기 경연대회를 열렬히 치르고 있어, 플래스틱 코팅을 한 종이로 만든 가방에 두꺼운 천으로 꼬은 손잡이를 다는 일에 수백만달러씩을 쏟아 붓고 있다.
‘색스 피프스 애버뉴’ 백화점은 저명 그래픽 예술가를 기용해 새로 만들었고 ‘로드 & 테일러’는 5가지 시안을 가지고 인쇄에 넘기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벅도프 굿먼’ 직원들도 9개월간 비밀리에 숙고를 거친 끝에 새 샤핑백을 내놓았다.
이처럼 샤핑백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진 배후에는 그것을 들고 다니며 소매점의 걸어다니는 광고게시판 역할을 하는 소비자들의 행태가 자리잡고 있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 고객들은 소매점에서 받아 온 샤핑 백을 세탁물을 담아 세탁소로 가져 가거나 책을 가지고 해변가로 가거나 직장에 도시락을 담아 몇달은 아니더라도 몇주는 너끈히 쓰다 버릴 가방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제일 좋은 가방이나 차지할 영광이기 때문에 절호의 마케팅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상점들이 저마다 그동안 허접했던 샤핑백을 두껍고 화려하게 만들어 무료 광고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들도 샤핑백을 버리지 않고 계속 써주기 바라는 상점측 희망에 부응하고 있다. 몇 주전 ‘로드 & 테일러’에서 샤핑한 뉴저지주 어빙튼 거주 알라나 커밍스(19)는 이 백화점이 새로 디자인해 내놓은 결코 찌그러지지 않을 것 같은 하얀 샤핑백을 당장 보조 가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루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담아가지고 다녀요” 맨해턴 지하철 역에 서 있던 케이 스카울러(34)도 새로 산 1,000달러짜리 가죽 ‘코치’ 가방보다 그것을 담아 가지고 왔던 샤핑백을 더 자주 쓴다고 말했다.
미국의 소매점들은 지난 수십년간 샤핑백을 그저 필요한 것 정도로 여겨 값싸고 예쁘게 꾸미지도 않은 종이나 플래스틱으로 만들어 왔다. 그러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보석상 ‘카르티에’ 같은 유럽의 소규모 고급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튼튼한 샤핑백들이 미국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1980년대에 화장품회사 ‘에이본’ 같은 소수의 미국 대기업들이 얇은 플래스틱을 씌워 튼튼하게 만든 종이 가방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호화 샤핑백이 보통 소비자들의 손에도 들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삼사년 전이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이나 ‘바나나 리퍼블릭’‘스와치’등이 라이벌 고급 브랜드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 그로서리 체인은 다수가 일반 샤핑백을 조금 더 두껍게 만들어 판매하면서 계속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새로 나오는 소매점 샤핑백들은 그렇게 두껍고 튼튼한데도 여전히 공짜다.
그러나 두고두고 쓰라고 더 튼튼한 샤핑백을 아무리 공짜로 만들어 줘도 소비자들의 선택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뉴욕시의 샤핑객들은 요가 옷을 파는 ‘룰루레몬 애슬레티카’의 두툼한 플래스틱 백을 고급 백화점에서 주는 얇은 종이백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소매업체들의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일년 전 ‘로드 & 테일러’ 직원들은 자기 회사 샤핑백이 너무나 싸구려라고 결론 짓고 마케팅 전문가 데이빗 리프먼에게 새 샤핑백 디자인에 도움을 요청했다. 비용을 아끼지 않고 새 가방을 찾아 나선 리프먼과 그의 직원들은 6개월 후 값나가 보이는 하얀 캔버스 같은 종이에 두꺼운 인조 손잡이를 단 샤핑백을 추천했다. 가방 겉의 흰색이 안의 오렌지 색을 정확히 16분의 1인치 파고 드는 이 새 샤핑백에는 ‘로드 & 테일러’라는 단어가 인쇄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드는 기술인 돋을 새김으로 장식돼 있다.
결과적으로 ‘로드 & 테일러’의 대형 종이가방은 제조 원가가 업계 평균의 2배도 넘는 80센트가량 들게 됐지만 다행히 소비자들에 가장 인기 있는 샤핑백 중 하나가 되는 바람에 아깝지 않은 투자가 됐다.
‘로드 & 테일러’의 샤핑백이 이렇게 달라짐에 따라 그보다 더 고급 백화점인 ‘벅도프 굿먼’이 그동안 사용해 온, 잘 차려입은 팍 애버뉴 여자들의 실루엣이 찍힌 연보랏빛 샤핑백이 상대적으로 얇고 허약해 보이게 됐다. 하다못해 손잡이도 ‘로드 & 테일러’ 것처럼 가방 안쪽까지 꿰어 매듭을 지은 것이 아니라 테입으로 붙여 놓았으니 더했다.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었던 ‘벅도프 굿먼’도 거의 일년동안 비밀리에 샤핑백을 다시 디자인했다. 2008년 가을에 데뷔할 새 샤핑백은 전혀 일회용 같아 보이지 않고, 아주 오래 옆에 두고 쓰고 싶게 만들었다고 에이던 켐프 부사장은 말한다. 패셔너블한 새 샤핑백을 내놓기 위해 벅도프 직원들은 가방의 프로토타입을 메고 맨해턴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댔다. 거리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블루밍데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1970년대에 디자인 된 현재의 샤핑백의 업그레이드에 착수했다. ‘블루밍데일’은 현재 개발중인 두껍고 계속 쓸 수 있는 가방을 이제까지 사용해 온, “미디엄 브라운 백’ 같은 말이 찍힌 얇은 종이 가방과 병용할 예정이다.
최근 뉴욕 미드타운 맨해턴에서 한 여성이 ‘로드 & 테일러’ 샤핑백(위쪽)을 들고 있다. 뉴욕 거리의 ‘스쿱’ 샤핑백(가운데)과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룰루레몬 애슬레티카’의 샤핑 백.
<뉴욕타임스 특약-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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