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깡마른 몸매 트렌드 돌아와
▶비만 치료제 등장에 힘입어
▶ 건강한 몸매 퇴보 우려 나와
▶일시적 트렌드 행복 도구 아냐
신형 비만 치료제 등장과 함께 깡마른 몸매인 ‘발레리나 몸매’ 트렌드가 다시 돌아왔다. [로이터]
1980년대 이상적인 몸매는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헤로인 시크’(heroin chic)로 불리는 병적으로 마른 몸매가 유행했다. 최근에는 큰 엉덩이를 강조한 곡선미 몸매가 여성들의 워너비 몸매 트렌드다. 패션처럼 유행을 타는 몸매의 다음 트렌드는 무엇일까?‘미국성형외과학회’(ASPS)는 2023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되는 몸매 트렌드로‘발레리나 몸매’를 지목했다.‘오젬픽’(Ozempic),‘위고비’(Wegovy)와 같은 비만 치료제 사용이 늘면서 마른 몸매 트렌드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일부 문화학자와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에 다소 우려를 보이고 있다. 성형 수술과 비만 치료제 사용은 일부 계층만 접근 가능한 수단이기 때문에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케이트 모스 ‘웨이프 몸매’의 부활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술은 지방 흡입, 유방 확대, 복부 성형 등이었다. ASPS 스티븐 윌리엄스 회장에 따르면 수술로 조각처럼 작고 섬세한 유방과 엉덩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이 최근 늘고 있다.
2010년대 ‘브라질리언 벗 리프트’(BBL) 수술로 엉덩이에 지방을 삽입하는 수술이 유행한 것과 정반대의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윌리엄스 회장은 “지난 10년간 뚜렷한 곡선이 강조된 몸매를 선호하는 현상에서 이제는 슬림한 몸매 선호 현상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라고 최근 몸매 트렌드를 설명했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패션 및 몸매 트렌드를 연구하는 피비 아피아지예 교수는 ‘발레리나 몸매’는 마른 몸매에 대한 선호와 팬데믹 이후 등장한 피트니스 문화가 결합한 현상으로 분석했다. 30년 전 영국 모델 케이트 모스가 유행시킨 ‘웨이프 몸매’(Waif Body)가 현대적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건강한 몸매’ 퇴보 우려
‘건강한 몸매’를 연구하는 케라 니옘브-디옵 영양학자도 고객들과의 상담을 통해 최근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니옘브-디옵 영양학자는 “한동안 주류 문화에서는 ‘긍정적인 몸매’(Body Positivity)가 강조됐는데 마른 몸매가 다시 돌아오면서 마치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ASPS의 윌리엄스 회장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마른 몸매 트렌드를 부활시킨 주 요인”이라며 “전에 없던 약물 개발로 인한 ‘혁명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패션과 헤어 스타일처럼 몸매 트렌드도 항상 변화한다. 트렌드가 대중화되면 부유층과 트렌드 세터들은 새로운 변화를 즉각 추구한다. 니옘브-디옵 영양학자는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처럼 소비되는 여성의 몸은 상품처럼 주기적인 트렌드 변화를 거친다”라며 “애플 힙으로 대변되는 BBL 몸매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뒤를 이을 새로운 몸매가 도입될 시기에 오젬픽과 같은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가 등장한 것”이라고 마른 몸매 트렌드 배경을 설명했다.
■마른 몸매에 대한 압박감 ↑
플로리다 국제 대학에서 몸매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는 로케시아 르네 애슐리 교수는 “여성들이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끊고 살지 않는 한, 자신의 몸이 남에게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라며 “몸매 트렌드와 몸매를 가꾸는 것과 관련된 정보가 넘쳐나고 있어 몸매 목표를 설정하고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안전한 방법으로 몸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발레리나 몸매’를 만들려는 여성들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성형 수술이나 비만 치료제 접근이 힘든 젊은 여성층에서 ‘발레리나 몸매’에 대한 압박감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다. 소셜미디어에 이미 발레리나 몸매 트렌드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엉덩이 곡선미가 강조된)’힙 본’ 시대가 내 몸매를 망쳤다’, ‘마른 몸매가 돌아오다니 믿을 수 없다’, ‘곧 다가올 마른 몸매 시대가 두렵다’ 등 불안감이 표출된 댓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니옘브-디옵 영양학자는 “영양학계, 특히 식이장애 분야에서의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라며 “마른 몸매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과 식이장애(거식증과 폭식증)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고 경고했다.
■트렌드는 일시적, 행복 도구 아냐
수 세기에 걸쳐 변화한 몸매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몸매 트렌드 이면에는 정치, 인종, 계급, 성별 등 복잡한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들 사이에서 결핵 환자를 모방한 듯한 가냘픈 몸매가 유행했다. 조지아 시대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여성 사르지에 사라 바트만의 비현실적으로 큰 엉덩이에서 영감을 받은 ‘버슬’(Bustle) 치마 패션이 붐을 이뤘다.
1920년대 등장한 ‘플래퍼’(Flapper·신여성)가 추구한 ‘소년 형 몸매’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반항과 극단적인 다이어트 지침을 따르려는 시대적 흐름이 결합한 산물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이 향수병처럼 갈망한 ‘모래시계’ 몸매가 유행하며, 지금의 ‘카다시안’ 몸매 스타일로 이어졌다.
발레리나 몸매의 재유행은 한때 엉덩이가 강조된 몸매의 유행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의 랩퍼 ‘서 믹스 어 랏’(Sir Mix-A-Lot)의 ‘Baby Got Back’ 뮤직비디오와 2000년대 여성 힙 합가수 니키 미나지의 뮤직비디오 ‘아나콘다’에 등장한 큰 엉덩이 몸매가 날씬하고 길쭉한 몸매를 선호하는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라테스 몸매’와 같은 더욱 날씬한 몸매 트렌드가 소셜 미디어에서 확인되고 있다. 영화배우 젠데야가 출연한 2024년 영화 ‘챌린저스’(Challengers)에 나온 ‘테니스코어’(Tenniscore) 패션도 테니스 선수처럼 마르고 건강한 몸매 선호 트렌드에 한몫할 것으로 전망된다.
몸매 트렌드 연구가들은 “트렌드는 일시적으로 트렌드를 따른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행복해지거나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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