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제65회 골든 글로브 각 부문 후보 발표장인 베벌리 힐튼 호텔에 도착하니 발표장은 벌써 동료 회원들과 기자 및 영화와 TV사 직원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2년 전에 골든 글로브를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이 됐는데 가입 후 1년간은 수상후보 선정자격이 없어 올해 처음으로 수상후보들을 골라 투표했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TV에 모두 상을 주며 영화 부문에서 작품과 남녀주연상은 각기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수상후보 발표는 상오 5시15분부터 시작됐는데 주요 부문 수상후보가 발표되는 5시39분부터는 뉴욕에서 방영하는 NBC-TV에 의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꼭두새벽에 발표하는 까닭은 동부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발표는 두 TV 배우 헤이든 파네티에르와 라이언 레널즈 및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사진)이 했다. 나는 내가 고른 수상후보 목록을 발표되는 후보들과 비교하면서 나름대로 스릴을 즐겼다.
이날 발표를 보고 새삼 깨달은 점은 동료회원들이 듣던 대로 수퍼스타들과 감정적이며 규모가 큰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 전쟁 속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무던한 영화 ‘속죄’(Atonement)가 작품·감독 및 남녀주연상 등 총 7개 부문에서 수상후보(드라마)에 오른 것이 좋은 예다.
발표 후 회사에 출근해 보니 벌써 이 영화의 남녀 주연배우들인 제임스 매카보이와 키라 나이틀리가 “후보로 골라줘 감사한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탐 행스와 줄리아 로버츠도 동료회원들이 매우 좋아하는 배우들. 두 사람이 주연하는 정치적 내용을 지닌 코미디 드라마 ‘찰리 윌슨의 전쟁’(21일 개봉)이 작품(코미디/뮤지컬) 및 남우주연과 여우조연상 등 모두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것은 다소 뜻밖이다(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또 역시 우리 동료회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조지 클루니와 자니 뎁이 각기 주연한 스릴러 드라마 ‘마이클 클레이턴’과 뮤지컬 ‘스위니 타드’(21일 개봉)가 모두 각기 작품상등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두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와 다분히 감상적인 ‘위대한 토론자들’(감독 겸·25일 개봉)은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냈다. 각 부문 후보는 5개씩 발표되나 이번에는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서 동점이 생겨 총 7편이 후보에 올라 예년보다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됐다. 워싱턴은 ‘아메리칸 갱스터’로 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케이트 블랜쳇도 우리들의 귀염덩어리들. 이스트우드는 이라크전의 후방 후유증을 다룬 ‘그레이스는 갔어’로 음악과 주제가상 2개 부문에서 함께 후보가 됐다. 블랜쳇도 역사극 ‘엘리자베스: 황금기’와 밥 딜란의 삶을 다룬 ‘나는 거기 없어’로 각기 여우주연(드라마)과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들 외에 필립 시모어 하프만도 가족관계 코미디 ‘새비지 가족’과 ‘찰리 윌슨의 전쟁’으로 각기 남우주연·조연상 후보가 돼 역시 2관왕이 됐다.
동료회원들이 또 무척 좋아하는 배우가 존 트라볼타. 그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서의 뚱보 어머니역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조디 포스터도 복수 스릴러 ‘용감한 사람’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올랐으니 올해 영화에 나온 웬만한 수퍼스타들은 모두 수상후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이 연기를 잘하는 것은 분명하나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고참 연기파로 ‘저녁에시작’에 나온 프랭크 란젤라를 탈락시킨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 하나 더 유감스러운 것은 음악 소품 드라마 ‘원스’의 음악이 탈락된 것.
나 개인적으로 기뻤던 것은 내가 한 표 던진 90세의 노장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TV 영화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로 남우주연상(TV 미니시리즈/영화) 후보에 오른 것. 보그나인과 친해 그를 밀어온 동료회원 아르만도가 보그나인이 후보로 발표된 뒤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고 “어니에게 전화로 후보에 올랐다고 알려줬더니 크게 웃으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 전한다.
나는 아르만도에게 “어니에게 한국의 H.J.도 축하한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옛날 영화들에 관한 얘기를 친절히 들려주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 투표에서도 내 표는 그의 것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오는 1월13일 하오5시(서부시간)부터 베벌리 힐튼 호텔서 열리고 NBC-TV가 생중계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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