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4월 ABC-TV가 미 영화계의 이단아 감독 데이빗 린치가 TV 시리즈 제작자인 마크 프로스트와 공동 제작하고 집필한 괴이하게 아름다운 시리즈 ‘트윈 피크스’(Twin Peaks)를 방영하자 매스컴들은 “TV 역사를 바꿀 시리즈”라며 격찬을 보냈었다. 나도 단숨에 이 환상광상곡과도 같은 시리즈의 어두운 무드와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인물들과 불가사의한 플롯에 이끌려 시리즈가 방영되는 매주 목요일을 열심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시리즈는 북서태평양 지역 캐나다 접경지대의 가상의 한 작은 마을 트윈 피크스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살인과 배신, 애정과 섹스와 마약 그리고 변태와 부패와 음모와 꿈이 마구 뒤엉킨 멜로드라마다. 내용과 분위기와 스타일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처음 볼 때 “야, 세상에 별 희한한 드라마도 있구나”하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
멀쩡하고 아름다운 것 속에 움츠리고 있는 추하고 괴이하고 본능적이며 기형적인 것들을 탁월한 암흑적 미로 표출해 낼 줄 아는 린치의 특성이 만연한 작품이다. 시리즈가 방영되자 타임과 뉴스위크 등 미 전국의 매스컴들은 이 작품에 관한 특집을 싣고 “기적 같은 작품이다. 미 TV 사상 가장 독창적이요 한번 보면 결코 그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는 시리즈”(타임), “가장 독특하고 총명한 영화인의 작품의 진짜 멋을 느낄 수 있는 시리즈”(뉴스위크)라고 칭찬했다.
특히 이 시리즈는 도시의 젊은층의 큰 인기를 모아 이들은 시리즈가 방영되는 목요일 저녁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TV 앞에 앉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일으켰었다. 그때 생긴 ‘트윈 피크스 축제’는 지금도 매년 시애틀 교외서 열리고 있다.
시리즈는 목재 마을 트윈 피크스의 고교 ‘미의 여왕’ 로라 팔머의 플래스틱에 싸인 나신이 호숫가로 떠밀려 뭍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로라의 사인을 FBI 요원 데일 쿠퍼(카일 맥래클랜·사진)와 마을 셰리프 해리 S. 트루먼(마이클 온트킨)이 캐가면서 평온한 외면을 유지하고 있는 트윈 피크스의 내면의 비밀과 공포와 비리와 도색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진다.
배역진이 너무 많아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다.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녹음기에 녹음하는 쿠퍼 외에도 울보 경찰, 외눈 부부, 통나무 여인 그리고 홍콩 출신의 미망인 목재소 여주인(조운 첸)과 그녀를 시기하는 시누이, 죽은 로라의 두 애인과 목재소를 차지하려고 노리는 호텔 주인 또 감옥에 간 남편을 두고 외도하는 젊은 식당 여종업원 등이 서로 뒤엉켜 세상의 연옥과도 같은 드라마를 연출한다.
대사는 엉뚱하고 느려 빠진 카메라 동작이 잡아내는 내용과 별 관계도 없는 피사체 하나하나에도 무언가 뜻이 담긴 듯 시사 하는 수수께끼 같은 시리즈다.
우중충하고 마음 앓는 듯한 침울한 분위기는 엉금엉금 기는 듯한 느린 진행 속도와 카메라 스타일(촬영이 눈을 찌르듯 멋있다) 그리고 불길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과 어울려 최면적 기운을 자아낸다.
특히 안젤로 바달라멘티(그는 린치의 영화 ‘푸른 벨벳’의 음악도 작곡했다)가 지은 음악은 맥 빠진 듯 처량하면서 낭만적이고 암울하다가도 장난치는 듯 하는데 또 집요하면서도 사색적이어서 마치 사이렌의 울음처럼 듣는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트윈 피크스’의 사운드 트랙은 불길하고 정열적이면서 또 야하고 비극적이다. 그 중에서도 시리즈의 주제를 담은 ‘사랑의 주제’와 보컬로 영탄하는 듯한 ‘나이팅게일’과 ‘밤 속으로’는 통곡하고 싶을 만큼 감각적이다.
이 시리즈는 궁극적으로 외부 세상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극히 평온히 자기 것을 지켜가며 사는 듯한 트윈 피크스와 그 마을 사람들의 도덕성의 부패를 해부하고 있다. 그러나 방영 처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8개 부문서 에미상에 올랐던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자아도취적으로 비틀거리면서 지나치게 초현실적으로 얘기를 이끌고 나가다가 팬들의 외면을 당해 이듬해 어설프게 종료되고 말았다.
패라마운트 홈 엔터네인먼트는 최근 시리즈 총 29편과 각종 특집을 담은 10장의 디스크(상영시간 25시간)로 된 ‘트윈 피크스 골드셋’을 출시했다. 후반 들어 신선함을 잃고는 있지만 괴이하고 희한한 암흑적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살인 미스터리 멜로물이다. 109달러.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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