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미국에서는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있을 때 조선 땅에서는 정조가 2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그는 영민하고 편견이 적었던 사람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적용하려 했고 개혁정치를 통해 정치구조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소장파 학자들을 기용 양성하는 한편, 군사지휘권의 일원화를 도모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개편을 단행하여 왕권을 돈독히 하여 조선왕조의 부흥을 이룩하였다.
그의 업적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신해통공’이라는 조치로 상업 활동에 있어 기존 상인들의 특혜를 없애서 새로운 중소 상인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고, 규장각을 만들어 역대국왕의 글과 글씨를 모아 놓기도 했는가 하면 역대 법전을 모아 ‘대전통편’을 편찬하여 법치의 기록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의 재위 시절에 편찬한 책들의 양은 방대하여 역사, 지리, 축성, 의례 등 각 방면에 걸쳐 저술하였고, 특히 중요 정사를 일지에 남기는 ‘일성록’을 작성토록 함으로 기록을 후세에 남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그의 모든 사상이나 정책, 전조의 역사 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큰 문화유산을 남겨 놓았다. 본인의 강론과 저술을 위해 그의 생전에 100권의 ‘홍재전서’를 편집해 내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저술활동을 위해 80여만자 이상의 활자를 여러 자체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대왕은 1800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재위 18년만에 승하하였다.
미국에서는 1800년 토마스 제퍼슨이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Washington DC로 수도를 옮기는 해였다.
그는 1803년 미시시피강 서쪽을 프랑스로부터 사들이고(루이지애나 테리토리), 1804년 루이스와 클라크를 서부개척의 전초대로 삼아 서부탐험의 명령을 내린다. 그것이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상상해 보면, 평소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미국의 발전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선견지명이 있던 미국의 초기 지도자들과 개척정신이 강했던 선구자들의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물론 수많은 토착민들의 희생이 요구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역사의 흔적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오류이지만. 그즈음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1799년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파와 왕정파간의 대립으로 혼란과 외세의 침입으로 어지러웠던 정국을 안정시켰다.
그는 개혁정치를 통해 세금과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다 쓰러져가는 산업부흥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800년에는 프랑스 은행설립을, 1802년에는 가장 명예스럽게 여기는 레지옹 드뇌르 훈장을 만들었고, 1804년에는 관습법과 봉건법을 통일한 ‘프랑스 민법전’을 제정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법의 기초가 되는 ‘법 앞에서의 평등, 종교, 경제 활동의 자유, 국가의 세속성’ 등의 가치관을 정립한 법전이었다. 그가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고,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결국 몰락으로 이어졌지만 그가 평등과 자유를 심어준 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조선은 1800년 정조 승하 이후 피비린내 나는 실학 중시의 남인 숙청이 순조를 대신한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 하에 이루어져 정조 시대에 이루어졌던 많은 개혁이 다시 권신들의 세력다툼 하에 무력해졌고, 프랑스는 루이 18세의 시대착오적 통치에 다들 불만족했었다.
사회과학에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패턴이 있어 그 패턴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과 유사하다.
모멘텀이 성립되었을 때,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없으면 쉽게 무너져 내린다. 어느 나라든 정치의 개혁과 시민참여, 그리고 정신적 계몽이 요구되고 있다. 이럴 때 올바른 국가관과 세계관, 역사관, 가치관 그리고 인성이 갖추어진 지도자들이 opinion leader가 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사상과 관념이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고 본다. 그래야만 패턴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모아지고, 그 모아진 힘들이 광범위한 시민참여와 일깨워진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그 모멘텀을 지키고 갈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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