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나인씨,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얼마 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우리를 기다리던 어네스트 보그나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중학생 때 눈물을 흘리며 본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의 얼굴 그대로다. 머리와 눈썹이 희어지고 얼굴에 주름이 갔지만 황소 눈알에 거구 그리고 웃으면 보이는 사이가 벌어진 앞 이빨 등이 모두 그대로다. 인사말을 나눈 뒤 내가 “영화에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때려죽인 당신을 미워했었으나 이젠 용서했다”고 말하자 보그나인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모두들 날 미워했지”라고 답했다.
이날 베벌리힐스의 페닌슐라 호텔서 있은 기자회견은 그가 주연한 할러데이 시즌용 홀마크 TV영화 ‘크리스마스를 위한 할아버지’(A Grandpa for Christmas-24일 하오 9시 방영)를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들과 보그나인은 주로 그의 과거를 묻고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고릴라처럼 생긴 얼굴 때문에 영화에서 악역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다정한 호인이다. 이 날도 그는 우리들의 질문에 큰소리로 웃으며 연기하듯 인상을 쓰면서 자상하게 대답을 했는데 비록 보청기는 귀에 꽂았지만 나이 90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생명력이 가득했다.
인터뷰 전에 있은 식사 때 난 그와 마주앉아 거푸 ‘지상에서 영원으로’와 보그나인과 공연한 몬티 클리프트에 관해 물어봤다. 보그나인은 “영화의 원전인 제임스 존스의 소설을 읽고 글 중 새디스틱한 군 영창장 팻초의 역이 바로 내 역이라고 느꼈다”면서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51년전 ‘마티’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보그나인은 자신의 배우 이전의 삶과 배우가 된 뒤의 경험을 마치 즉석에서 자서전을 읽어주듯 들려줬는데 자기와 공연한 왕년의 빅스타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회상할 때는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는 듯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 큰 미소에 큰 목소리로 과거의 즐거웠던 일들을 들려줬다.
그 중에서도 결혼 32일만에 헤어진 유명한 브로드웨이 가수이자 자신의 네번째 부인이었던 (그는 현재 다섯번째 부인과 잘 살고 있다) 에셀 머맨과의 이혼 사유가 재미있다. 둘은 신혼여행으로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자기만 알아보고 머맨은 못 알아본 것이 아내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는 것이다. 보그나인은 “나중에 머맨이 쓴 자서전을 읽어보니 자기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썼다라”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보그나인은 유머 감각이 풍부했는데 또 매우 겸손해 우리들이 모두 “미스터 보그나인”이라고 부르자 “콜 미 어니”(어니라고 불러요)라고 당부했다. 마음 좋고 장난기 있는 할아버지 같아 시간 가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뷰 시간을 연장해 가며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보그나인은 베티 데이비스, 게리 쿠퍼, 빌 홀든, 지미 캐그니, 셸리 윈터스 등 외에도 유명을 달리한 많은 스타들의 이름을 들며 그들을 그리워했는데 특히 ‘블랙록의 흉일’에서 공연한 스펜서 트레이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요즘 배우로는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쓸 만한 배우라고. 보그나인은 이어 “과거 우리들에겐 연기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의미였다”면서 “요즘 영화들을 보면 도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다. 섹스와 폭력과 컴퓨터 효과가 남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그나인은 “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영화에서 욕을 절대로 안 했고 나체역도 모두 거절했다”면서 “비록 내가 악역을 여럿 했지만 실제 인물로 악마나 다름없는 알 카폰 역을 하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알려줬다.
이탈리아계인 보그나인은 가끔 이탈리아어를 섞어가며 말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왕년의 섹시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영화를 찍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며 재미있어 했다. “감독이 지나에게 ‘해가 지니 빨리 찍자’고 말하자 지나는 발톱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안 끝났다면서 들은 체도 안 하더라”며 큰 눈알을 굴렸다. 이어 그는 역시 악역을 한 ‘북극의 황제’에서 공연한 리 마빈을 회상하며 “그는 내게 ‘우리는 한 시대의 끝’이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보그나인은 자기 건강의 비결이 잘 자고 물 많이 마시고 독서하면서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귀띔해 준 뒤 “내가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행복을 줬다면 난 행복하다”며 인터뷰를 끝냈다. 난 인터뷰 후 그와 사진을 찍으면서 “당신을 만난 것은 내 하나의 꿈의 실현입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100세 이상 사세요”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보그나인은 이에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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