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까지 LA 아크라이트 극장(선셋+바인)에서 계속되는 미영화학회(AFI) 주최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밀양’(Secret Sunshine)을 봤다.
이 영화는 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작품의 개성이 뚜렷한 이창동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데다가 주연한 전도연(사진)이 올 칸영화제서 주연상을 받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한국은 이 영화를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부응 못하는 영화다. 이 감독은 지적이요 문학적이며(그는 소설가 출신이다) 또 개인적인 ‘오퇴르’로 나는 그의 전작들인 ‘초록 물고기’와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를 모두 좋아한다. 그는 배우들로부터 뛰어난 연기를 추출해 낼 줄 아는 감독인데 ‘오아시스’에서 심한 뇌성마비 환자로 열연한 문소리는 2002년도 베니스영화제서 신인 배우상을 받았다.
남편을 잃은 뒤 외아들마저 잃은 여인의 한과 고통과 슬픔과 분노 그리고 구원과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밀양’은 흥미 있는 영화이긴 하나 긴장감이나 극적인 에너지가 충분치 못한 그저 무던한 영화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142분의 긴 상영시간에서 20여분은 잘라내도 될 것이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피아노를 전공한 30대 초반의 신애(전도연)는 초등학생인 아들 준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내려온다. 그러나 피아노학원을 열고 준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한 신애의 삶은 준이 유괴돼 살해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무신론자인 신애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위로 받기 위해 교회를 찾으면서 갑자기 새로 태어난 기독교 신자가 된다. 그러나 이런 거의 인위적인 재생은 환멸로 뒤바뀌고 신애는 다시 인간이 돼 세상과 직면한다. 이런 내용을 줄거리로 동네에서 자동차 수리 공장을 경영하는 39세난 노총각 종찬(송강호가 능청맞게 잘한다)의 신애에 대한 순애보가 곁가지를 친다.
신애가 기독교 신자가 된 뒤 자주 묘사되는 예배장면은 거추장스러울 뿐으로 영화에 아무런 극적 요소를 제공치 못한다. 대폭 잘라내야 할 부분이다. 이 영화는 거의 안티 크라이스트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 감독은 신에게서 위로를 받으려는 마음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이 감독 개인이 어떤 종교적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종교적 내용은 브레송의 영화를 연상케도 하나 묘사가 다소 조야하다.
영양분이 모자라는 오이처럼 생긴 전도연은 ‘너는 내 운명’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해 많은 사람을 울렸는데 이 영화는 전도연이 거의 혼자 이끌고 가다시피 할 정도로 그의 연기력에 의존하고 있다. 보는 사람의 심장을 쥐어트는 듯이 치열하면서도 섬세한 연기가 감동적이다. 문소리는 육체적 질환자로 상을 받았고 전도연은 정신적 질환자로 상을 받은 셈.
‘밀양’의 영어 제목은 이 도시 이름의 한자의 뜻을 번역한 것인데 원래 뜻대로 하자면 이 감독의 말대로 ‘Dense Sunshine’(짙은 햇볕)이 맞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평에서 권위 있는 두 신문 LA 위클리와 버라이어티로부터 각기 상반된 평을 받았다. LA 영화비평가협회의 동료기자로 LA 위클리의 영화부장인 스캇 화운다스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칭찬한 반면 버라이어티의 데렉 켈리는 ‘야심적이나 궁극적으로 주인공의 갈등을 영화적 요건으로 극화하는데 실패했다’고 평했다. 난 후자편이다.
과연 ‘밀양’은 5편의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아시아 영화를 주로 홍보하는 TC:DM의 대표 데이빗 마그다엘은 AFI 영화제에서 나를 보자 “난 ‘시크릿 선샤인’을 아주 좋게 봤다”면서 “올해는 뛰어난 외국어영화가 별로 없어 이 영화가 후보에 포함될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한국영화진흥위(KOFIC) 미주사무소에 따르면 ‘밀양’은 지난달 17일 프랑스 전국의 359개 극장에서 개봉,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포지티프와 카이에 뒤 시네마 등 영화전문지들의 반응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한다.
한편 시상시즌을 맞아 ‘밀양’의 홍보를 담당한 베테란 미키 카트렐은 “오스카를 위한 홍보의 일환으로 내년 1월 3~5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밀양’등 이감독의 전영화 4편을 상영한다”며 “이감독은 4일에는 작품소개를 그리고 5일에는 관객과의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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