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을은 비가 내렸다. 지난 주말 각기 오는 11월2일과 9일에 개봉될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와 ‘양들을 위한 사자들’(Lions for Lambs)의 배우들과 감독 인터뷰 차 뉴욕엘 다녀왔다. 말똥냄새가 코를 찌르는 센트럴팍 건너편의 에섹스 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 후 호텔 로비에서 칵테일 맨해턴으로 여객의 여분이 있는 가슴을 달랜 뒤 밤의 센트럴팍을 산책했다. 겁이 나서 깊숙이는 못 들어갔지만 인적이 끊긴 공원의 밤을 걸으면서 도심의 고독을 심호흡했다.
이튿날은 가을비가 제법 세게 내렸다. 잿빛 연무 속에 갇힌 마천루들이 흑백 고전영화 장면들을 연상케 했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과 함께 숙소 근처의 맨다린 오리엔탈 호텔 꼭대기 층에서 ‘아메리칸 갱스터’의 주인공 덴젤 워싱턴을 먼저 만났다. 검은 셔츠에 검은 양복차림의 워싱턴은 준수한 검은 미남이었다.
그는 베트남전 때 동남아에서 헤로인을 사망한 미군의 관 속에 숨겨 밀수, 떼돈을 번 할렘의 마약 왕이었던 실제 인물 프랭크 루카스로 나온다. 어릴 때 할렘에서 자란 워싱턴은 영화 속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 그와 사진을 찍는데 워싱턴이 내게 “야 당신 냄새 참 좋구나”라고 말한 뒤 자신도 그 말이 쑥스럽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었다. 그의 말에 나와 동료들도 모두 박장대소를 했는데 아마 내가 그 날 아침 면도 후 바른 애프터 쉐이브의 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워싱턴에 이어 영화에서 워싱턴을 체포한 형사로 나온 러셀 크로우가 입장했다.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셔츠 위에 소매 없는 조끼를 걸친 크로우는 장돌뱅이 같았다. 우리들을 보고 “모두 앉으세요. 실내에서 서 있으면 안 됩니다”라며 익살을 떨었다. 그에 이어 이 영화의 감독 리들리 스캇을 만났다.
가을 비 우산 속에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양들을 위한 사자들’을 감독하고 진보적 대학교수로 연기도 한 로버트 레드포드를 만났다. 금발에 ‘아메리칸 골든보이’풍을 아직도 지닌 그가 70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통렬히 비판한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정치 드라마다. 레드포드는 차분하나 강한 톤에 의식이 뚜렷한 말로 현 부시의 실정을 비판했다. 매우 지적이요 진지한 사람이었다. 저녁에는 할렘의 전설적인 쇼 무대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아메리칸 갱스터’ 프리미어 파티에 참석했다.
이튿날은 비가 그치고 청명한 가을 날씨.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오텀 인 뉴욕’이 생각났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조반 후 ‘양들을 위한 사자들’에서 베테런 TV 기자로 나온 메릴 스트립을 만났다. 뒤로 단정히 묶은 금발이 파란 눈과 백색자기 빛 얼굴을 도드라지게 받침했는데 지성미가 몸에 흠뻑 배인 여인이었다. 질문에 답을 할 때면 눈을 감고 오랜 생각을 하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정치인들이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스트립이 이에 “당신은 거짓말을 합니까”라고 묻기에 난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면 정치가라고 달라야 될 까닭이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는 모두 현재의 이 혼란에 책임을 져야 해요. 우리는 모두 세계 속 현재 우리의 위치에 책임을 져야 해요”라고 답했다. 여하튼 나는 내 질문 때문에 뉴욕 체류 내내 동료들로부터 ‘거짓말쟁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인터뷰 후 스트립과 사진을 찍을 때(사진) 내가 “LA 코리아타임스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스트립은 “오, 그러냐”면서 “당신의 회장과 그의 아들 마이크 챙을 잘 안다”며 반가워했다.
마지막으로 ‘양들을 위한 사자’에서 야심적인 보수파 상원의원으로 나온 탐 크루즈를 만났다. 정장을 한 크루즈는 동안이었다. 그런데 크루즈는 인터뷰를 불안해하는 태도였다. 그동안 미디어에 너무 두들겨 맞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답도 문제를 피해 도망 다니듯이 애매모호했다. 내가 “당신은 왜 요즘 모든 사람들이 미국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더니 “내가 뭐라고 말해도 분명히 당신은 자기 의견을 갖고 있을 테니 당신 자신이 답하세요”라는 식이었다.
돌아오는날 시간이 좀 남아 호텔뒤의 카네기 홀과 1온스에 250달러짜리 벨루가 흑해 캐비아를 서비스하는 뉴욕의 명물식당 러시안 티 룸을 겉에서만 보고 케네디공항행 셔틀에 올랐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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