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다니던 어느 겨울 밤 나는 자주 드나들던 명동의 지하 술집 ‘25시’에서 막걸리에 대취해 인근의 명동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마리아 앞에 꿇어앉아 두 손을 모아잡고 기도를 드렸다. 당시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하나의 하소연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 옳겠다.
당시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간난했던 때였다. 많은 청춘들은 빈농들이 초근목피를 씹으며 궁기를 면하듯 꿈과 낭만 하나를 씹으며 어두운 날들을 보냈다. 삶이 그런데다가 대학생이란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세대여서 나는 그 날 아마도 술김에 마리아 앞에 꿇어앉았던 것 같다. 내가 무슨 하소연을 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소연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예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했듯이 기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마음의 짐을 덜고 쉬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리라. 마음속에 쌓인 걱정과 고뇌와 슬픔등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들을 털어놓지 않으면 속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가 그 일례다. 이런 속병은 때로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월스트릿 저널은 매일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세배나 매우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한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조사는 또 미국인들 중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비신자들보다 두배 이상이 ‘매우 행복하다’고 답했으며 비신자들은 신자들보다 세배나 자신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런 통계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보다 행복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종교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명상과도 같은 기도는 우리 안의 분노와 근심 같은 유해한 감정들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고 그에 따라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초등학생 때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서 순교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보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사자가 자기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데도 평화로운 얼굴로 찬송을 부르며 죽음을 맞는 기독교 신자들이야말로 겁 없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확실히 믿으면 겁이 없어지게 마련인데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했고 고 딘 디엠의 독재에 항거하는 베트남 승려들은 서슴지 않고 분신을 했다.
월스트릿 저널은 또 적어도 1주에 한번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건강을 누리고 우울증 등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낮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는 1주에 최소 한번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평균보다 25%나 낮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찬반론이 분분한데 신문은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평균 이상 건강한 것을 신의 축복 때문이라기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설명했다. 즉 종교행사에서의 명상과 사람들간의 사회적 연계 및 흡연과 음주 등 불건강한 행동을 금하는 가치관의 정립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이유를 열거하는 사람들조차 기도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신의 간섭을 따지기 전에 내면성찰이기도한 기도는 스트레스 해소의 묘약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일진대 그것이 없어지면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고백하는 자와 고백을 받는 자의 얘기를 극적으로 묘사한 영화로 ‘가수이지 노래는 아니야’(The Singer Not the Song·1961·사진)가 있다. 멕시코 깡촌을 말아먹는 무신론자인 젊은 산적두목과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신심과 의지가 강한 가톨릭 신부간의 치열한 내면 대결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냉소적인 두목은 신부를 존경하게 되는데 둘은 끝에 모두 토벌군의 총에 쓰러진다. 신부는 숨져가는 두목에게 종부성사를 행하면서 신의 말씀을 수락한다면 자기 손을 잡으라고 간청한다. 두목이 자기 손을 잡는 것을 느낀 신부는 만족한채 숨진다. 이어 두목의 “가수(신부)이지 노래(신의 말씀)는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그의 손이 신부의 손으로부터 떨어진다.
그런데 교회를 나가고 있는 나는 과연 행복한가. 그렇다고 선뜻 대답이 안 나온다. 난 아직 확실한 신자가 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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