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영 중인 상영시간 160분짜리 웨스턴 ‘비겁자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은 19세기 미 서부의 악명 높은 무법자 제시 제임스의 삶을 시적 비극미로 채색해 조명한 훌륭한 영화다. 제시 역으로 얼마 전 끝난 베니스영화제서 주연상을 받은 브래드 핏이 소유한 플랜 B가 제작했고 뉴질랜드 태생의 앤드루 도미닉이 감독했다. 도미닉은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양분 짓는 웨스턴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제시와 그를 쏴 죽인 제시의 부하 로버트 포드와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분위기 위주의 사색적인 이 영화는 서술방식이 소걸음이어서 속도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이 보려면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느리고 긴 영화의 대명사와도 같은 테렌스 맬릭(‘신세계’)의 연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데 철학적 장엄함 마저 느끼게 만드는 한번 도전해 볼 만한 작품이다.
남북전쟁 후 미 서부를 휩쓸고 다니며 열차와 은행강도를 한 제시 제임스(사진)는 역시 서부시대의 빌리 더 키드와 경제공황시대의 바니와 클라이드와 함께 미국인들에 의해 전설적 인물로 대접 받는 무뢰한이다. 그러나 모든 전설적 악한들이 다 그렇듯이 제시의 삶도 역시 신화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됐다는 것이 웨스턴 사학자들의 견해다.
미주리의 농부 출신인 제시는 19세때 형 프랭크와 영거 형제들과 함께 제임스-영거 갱을 조직, 무려 18년간이나 미주리와 이웃 주를 휩쓸고 다니면서 은행과 열차강도를 자행했다. 제시는 철도회사 등 부유층의 돈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미서부의 로빈 후드요 낭만적 반항아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킬러였다. 이런 제시에게 의적의 이미지를 부여한 사람이 캔사스시티 타임스의 기자 존 뉴만 에드워즈였다. 기록을 보면 그가 제시를 미 남부의 잃어버린 이념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묘사, 전쟁에 져 북부 사람들을 증오하는 남부 사람들의 영웅이 됐다.
명제작자 새뮤얼 골드윈도 말했듯이 항상 사실보다 전설이 월등히 매력적이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일단 전설이 된 사람들을 우상화하고 미화하게 마련이다. 제시는 생전 이런 대중의 관심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범죄현장에 대 언론용 메시지까지 남겼다. 서부시대의 스타였다.
제시가 무법자가 된 것은 전쟁의 승자인 북부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 그는 새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에 저항했으나 결국 현상금 1만달러와 함께 제시 제임스 킬러라는 명성을 노린 스무 살이 채 안된 로버트에 의해 사살됐다. 로버트는 1882년 4월3일 미주리 세인트 조셉에서 익명으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제시가 의자 위에 올라서 벽에 걸린 액자의 먼지를 털고 있을 때 그를 등 뒤에서 쏴 죽였다. 제시는 34세였다.
얼마 전 폐막한 토론토영화제에 참석해 영화 ‘제시 제임스의 암살’에서 로버트 포드로 나온 케이시 애플렉에게 “사실 로버트는 무자비한 킬러를 죽였는데 왜 비겁자라고 불린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봤다. 케이시는 “우선 그가 등 뒤에서 제시를 쏴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로버트가 제시를 사살한 것은 자신이 결코 손에 잡을 수 없는 명성을 동경했기 때문”이라고 로버트의 젊은 어리석음을 설명했다. 배신으로 명성을 얻은 로버트도 그를 증오하는 사람의 총에 맞아 죽었다. 제시와 로버트의 얘기는 명성(악명이 더 정확한 표현)과 오명의 덧없음을 대위법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시 제임스의 얘기는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제시 역을 맡은 배우들로는 타이론 파워, 콜린 패럴, 제임스 코번, 제임스 키치, 로이 로저스, 로버트 두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로브 로우 등이 있다. 제임스 딘도 TV 드라마 ‘유 아 데어’에서 제시로 나왔다. 그런데 제시는 이들 배우들과 달리 신장 5피트6인치, 체중 120파운드의 가녀린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제시 제임스에 관한 영화 중 아마도 팬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타이론 파워가 주연한 ‘제시 제임스’(1939)일 것이다. 액션과 컬러가 보기 좋은 흥미진진한 영화로 프랭크로는 헨리 폰다가 나온다. 이와 대조되는 또 다른 수작으로는 제임스 키치가 제시로 나온 사실적인 치열한 피투성이 액션 영화 ‘롱 라이더스’(The Long Riders·1980)가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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