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트라가 ‘“시카고 시카고 마이 카인드 오브 타운”이라고 노래 부른 시카고에 가면 반드시 재즈클럽엘 들른다고 벼르던 마음을 이번에 채웠다. 지난 주말 워너브라더스의 초청으로 동료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20여명과 함께 시카고에서 촬영 중인 재생된 배트맨 시리즈 제2편인 ‘암흑의 기사’(The Dark Knight) 세트를 방문했다.
난 그동안 시카고를 몇 차례 방문했지만 재즈클럽에 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 남부에서 생성된 재즈가 북상하면서 자리 잡은 곳이 시카고로 시카고 하면 바람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재즈다. 도착한 날 저녁은 서울 한국일보 시절 함께 사회부 졸병으로 고생한 김인규 한국일보 지사장과 고기에 소주를 마시며 옛날 얘기로 보냈다. 우리가 “형, 아우”하며 한국일보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30년.
이튿날 세트 방문차 호텔을 나서는데 아침부터 덥고 끈끈하다. 촬영 장소는 시카고 강가의 명물 건물인 속칭 ‘옥수수 속’ 아파트(이 건물 주차장은 스티브 매퀸의 액션물 ‘헌터’에서 쓰여 졌다)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전 IBM 빌딩.
시리즈 제1편 ‘배트맨의 시작’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이 다시 손잡고 만드는 ‘암흑의 기사’는 우리가 세트를 방문한 날이 촬영 66일째. 총 128일로 촬영을 마친 뒤 내년 7월18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는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으려고 ‘RFK’(‘Ron’s First Kiss’로 론은 감독 놀란의 아들 이름)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빌딩 3층의 회견실에서 모니터로 촬영 장면을 구경하며 제작진 및 배우들과 자유 대화식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 날 영화 속 고댐시티의 검찰총장이자 배트맨의 적으로 1인2역을 하는 아론 에카르트의 촬영 장면을 보면서 배우 노릇이 얼마나 하기 힘든 것인가를 절감했다. 촬영 장면은 그의 기자회견 장면이었는데 이 한 장면을 아침 10시께부터 오후 5시께까지 찍었다.
촬영이 끝난 뒤 회견장에 나타난 에카르트는 “피곤하다”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그에게 “대사를 몇 번 까먹던데 그런 일 자주 있느냐”고 묻자 에카르트는 “피곤하면 간단한 대사마저 잊는 수가 있다”고 실토.
영화의 무대인 고댐시티 하면 보통 뉴욕을 연상하는데 시카고에서 찍는 까닭을 묻자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네이산 크로울리는 “시카고 고층건물의 계곡이 뉴욕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영화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복잡한 대도시인 시카고의 거리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빨리 찍어야 한다”면서 “시카고 시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우리 영화를 환영해 촬영이 순조롭다”고 덧붙였다. 이어 크로울리는 “이번에는 배트맨의 새 모터사이클로 ‘배트파드’가 등장한다”고 알려줬다.
이어 회견장에 나온 놀란은 이번 영화는 법을 무시하고 범법자들을 처벌하는 ‘위험한 영웅’인 배트맨의 윤리문제를 다루게 된다고 알려줬다. 내용과 주인공들이 모두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것과 아울러 배트맨 의상도 과거보다 훨씬 더 효능적으로 디자인됐다. 과거 의상의 젖꼭지 등을 없애고 모양과 기능면에서 모두 새롭고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촬영 후 회견장에 나온 베일도 “전편서 입은 옷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베일은 인터뷰후 내게 손에 찬 브루스 웨인의 시계를 보여주며 “멋있지 않느냐”고 자랑했다. 한편 배트맨의 제1의 적인 조커로는 히스 레저가 나온다.
배우들과 제작진도 힘들었겠지만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 인터뷰를 해야 하는 우리들도 녹초가 됐다. 인터뷰 후 우리는 4층으로 올라가 아래 거리에서 진행 중인 주방위군과 경찰이 나오는 장면 촬영을 구경했다. 조금 있으니 주방위군을 태운 2대의 헬기가 시카고 강 위를 저공비행(사진)하며 무법천지가 된 고댐시티의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재즈클럽 ‘백 룸’엘 들렀다. 한참을 걸어도 클럽이 안 보이기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거지에게 물었더니 “바로 저기 있지 않느냐”면서 “그레이트 뮤직”이라고 토까지 단다. “고맙다”며 1달러를 줬다. 아직도 금전등록기를 쓰는 아담한 클럽인데 레이 찰스가 잘 부르는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를 멋있게 연주하고 노래했다. 드러머이자 가수가 “어디서들 왔느냐”기에 “난 LA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거기에도 블루스나 재즈가 있느냐”고 비아냥대면서 “어떻게 연주해주랴”고 묻는다. 난 “더티 앤 슬로”라고 주문했다. 자정까지 칵테일과 재즈를 즐겼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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