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듯이 예쁜 리즈 테일러가 21세 때 나온 클래시컬 뮤직이 있는 삼각관계 소프오페라 ‘라프소디’(Rhapsody·1954)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테일러가 자기 애인이자 바이얼리니스트인 비토리오 가스만(이탈리아의 미남 배우)과 컨버터블을 타고 달리던 중 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끈다. 이에 가스만이 “그거 멘델손(가스만은 이렇게 발음했다)이야”라며 다시 라디오를 트는데 이 음악이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이다.
소위 3대 바이얼린 협주곡으로는 모두 D장조인 베토벤과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꼽지만 기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뛰어나게 탁월하고 아름다운 것은 멘델스존의 E단조 협주곡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좋아하기는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더 좋아한다.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우수와 서정성과 멜로디 때문인데 이 곡은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매우 좋아해 대중 음악화 했다. 대학생 때 이 곡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들으면서 정이 담뿍 든 것도 내가 이 협주곡에 애착하는 까닭 중 하나다. ‘라프소디’에서 나중에 성공한 가스만이 연주하는 것도 이 협주곡이다.
이 곡은 처음에 솔로 부분이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곡도 거칠고 난삽하다는 이유로 비평가와 연주자와 청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지금 우리의 사랑을 받는 여러 고전음악들이 작곡 당시에는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현대음악들도 세월이 지나면 또 하나의 고전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 생각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10일 밤 할리웃 보울에서 길 샤함이 LA 필과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들으면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 곡의 솔로 부분이 얼마나 연주하기가 힘든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제1악장의 긴 카덴자는 내게 거의 고통과도 같은 희열을 느끼게 했다.
새라 장도 이 곡을 잘 연주하지만 이 날 샤함의 연주는 그의 영혼이 소진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가 될 만큼 정열적인 것이었다. 그의 뛰어난 기교와 열정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감상적일 만큼 멜랑콜리한 서정성과 몸부림치는 듯한 소리들에 가슴이 감전되는 전율을 경험했다. 레너드 슬래트킨의 지휘는 단순 명료하고 엄격하면서도 추진력이 있었다.
그런데 제1악장의 카덴자가 끝나자 청중들이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브라보”라고 아우성을 쳤다. 아무리 연주 때마다 비행기의 엔진소리와 포도주병 구르는 소리를 한번쯤은 들어야 되는 할리웃 보울이라고 하지만 카덴자 뒤에 환호 갈채하는 청중을 난 이날 처음 봤다. 이런 반응에 샤함과 슬래트킨이 서로 미소를 나누었다.
이 날은 차이코프스키 외에도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의 경쾌한 서곡과 무소르그스키의 어두운 톤을 지닌 묘사음악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된 러시아의 밤이었다. 마지막 연주곡인 ‘전람회의 그림’의 피날레인 ‘키에프의 대문’이 연주되면서 보울의 밤하늘을 오색찬란한 불꽃들이 어지럽게 수를 놓았다. 종소리도 명료한 오케스트라의 우람찬 클라이맥스와 꽃불 터지는 소리에 마신 포도주 기운까지 올라 그냥 밤이 좋았다.
이번 주는 어쩌다 보울엘 두 번이나 찾아갔다. 지난 8일 일요일에는 우리 신문사 후원으로 LA 필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마법의 피리’(The Magic Flute)의 콘서트 형태의 공연을 들으러 갔다.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유일한 독일어 가사로 된 이 아름답고 감미로운 작품이다. 이날 공연에는 꾀꼬리 음성을 지닌 세계적 스타 가수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가 자기의 단골역 중 하나인 밤의 여왕 역을 노래해 한인 청중들이 많이 참석했다.
머리에 반짝이는 보석이 박힌 관을 쓰고 어깨가 드러난 새빨간 가운을 입고 무대에 나온 조수미는 제1막의 아리아를 부를 때 힘이 들어보였다. 목소리가 약간 깨어지는 것처럼 들렸다. 제1막이 끝나고 휴게시간에 “미스 조가 약간 몸이 안 좋지만 청중을 위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조수미는 제2막에서는 다소 안정된 음성을 되찾았다. 이날 LA필의 연주는 역시 슬래트킨이 지휘했는데 힘차면서도 사뿐했다. 그러나 가수들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무던해 마법이 모자라는 ‘마법의 피리’ 공연이었다.
한편 오는 26일(하오 8시)에는 본보후원으로 새라 장이 LA필과 함께 브루흐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또 다른 연주곡은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과 슈만의 교향곡 제3번 ‘라인’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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