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액션영화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베테런 정창화 감독이 홍콩에서 연출해 미국 등 세계적으로 빅 히트한 1973년작 무협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Five Fingers of Death)이 DVD로 나왔다.
정 감독은 김기덕과 박찬욱 같은 감독들이 한국 영화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오래 전에 한국인 감독의 솜씨를 뽐낸 사람이다. 그는 사실 한국 감독의 세계화의 길잡이를 한 사람이다.
홍콩의 무협영화 제작의 1인자들이었던 쇼 브라더스가 제작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홍콩 영어제목은 ‘킹 박서’(King Boxer·사진)요 한자로는 ‘천하 제일권’이다. 이 영화는 무술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젊은이가 피나는 노력 끝에 수많은 라이벌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중국 최고의 무술시합에서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현재 남가주 샌디에고 인근 라호야에 살고 있는 정 감독과 지면이 있어 최근 이 영화에 관해 그와 대화를 나눈 바 있다. 정 감독은 “이 영화는 정통 무협영화와 현대물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은 액션영화”라면서 “액션만 잘 하는 영화가 아니라 주제와 이야기 등이 먼저 관객에게 감명을 주고 거기에 새로움과 신비감을 더한 영화로 만들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시종일관 액션으로 가득하면서도 이야기가 다채롭다. 젊은이가 훌륭한 사부의 지도로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뛰어난 무협인이 된다는 정통 무협영화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의리와 충성과 배신 그리고 복수와 대혈전이 이어지는데 여기에 가무와 로맨스까지 곁들여져 재미 만점이다.
주인공 조지호는 주방 일부터 시작해 죽음의 다섯 손가락인 철권법을 터득, 원수와 라이벌 등을 닥치는 대로 맨손으로 처치하는데 일전을 할 때면 손바닥에서 붉은 기운이 솟는다. 동원되는 무기도 봉과 철장과 단검과 사무라이 검 등 다양한데 이것들이 주인공의 맨 손을 당하지 못한다.
잔인할 정도로 유혈 액션이 난무하는데 정 감독과 함께 70년대 홍콩에서 활동했던 배우 남석훈이 남궁훈이라는 예명으로 조연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남궁훈은 조지호에게 스승의 수제자 자리를 빼앗긴데 한을 품고 스승을 배신하나 오히려 자기가 배신을 당해 두 눈알을 뽑히는 고통을 당한다(영화에 뽑힌 두 눈알이 나온다). 맹인이 된 남궁훈은 암흑 속에서 자기의 눈알을 뽑은 적의 눈알을 빼내는데 그야말로 ‘눈에는 눈’식의 복수극이다.
이 영화를 보면 정 감독이 크게 감동을 받았다는 조지 스티븐스의 웨스턴 ‘셰인’을 연상케 하는 장면과 내용이 엿보인다. 정 감독은 ‘셰인’에서 여러가지 기술적인 면과 함께 이야기를 지닌 서부영화의 본보기를 발견했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1966년에 만든 한·홍 합작영화 ‘순간은 영원히’(Special Agent X7)를 본 쇼 브라더스 사장 란란 쇼에 의해 전속감독으로 영입됐다. 정 감독은 “당시 홍콩 감독들은 무협영화는 잘 만들었지만 진정한 액션영화를 만들 만한 감독이 없었다”면서 “란란 쇼는 내가 현대 액션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 나를 불렀다”고 기억했다.
정 감독에 따르면 당시의 홍콩영화는 칼이나 창을 쓰는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또 단조로운 기법 때문에 관객들의 인기가 하강곡선을 그릴 때였다. 그는 이럴 때 작품기획을 위해 중국 고대 무술서적을 보다가 동물의 생존기법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동남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영화를 수입한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가 1973년 3월 이 영화를 전 미국에서 개봉, 미국의 대작들을 누르고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야말로 진정한 세계 최초의 국제 쿵푸 고전영화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정 감독이 쇼 브라더스사에서 만든 6번째 영화인데 첫 번째 작품인 ‘천면마녀’는 유럽으로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다. 그는 홍콩에서 만든 11편의 영화를 포함, 생애 총 53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중 30편이 액션영화. 그래서 본인도 “‘액션영화의 대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액션영화에 일생을 바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정 감독은 오는 12일부터 열리는 한국의 부천 국제팬태스틱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직을 맡아 귀국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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