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연자들이 나환자들처럼 사회에서 격리된 이제 흡연이 스크린에서마저 규제를 받게 됐다.
영화에 관람등급을 매기는 미영화협회(MPAA)는 최근 앞으로 흡연이 등급판정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MPAA는 영화 속 흡연의 역사적 또는 내용상의 타당성과 함께 흡연의 미화화와 만연성 등이 등급판정에 고려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MPAA의 이같은 발표는 영화 속 흡연이 10대들로 하여금 흡연케 만드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각종 보고서와 반끽연단체의 맹렬한 로비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MPAA의 발표 내용이 너무 애매모호하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 되고 세 개비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인지 또 내용상 타당성 여부를 가리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분명치가 않다. MPAA 소속 분류등급 심사위가 엿장수 마음대로 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와 흡연은 잠자리를 같이 해온지가 오래다. 옛날 영화를 보면 남녀 배우들이 모두 담배를 태웠다. 골초 커플로 유명한 것이 보기(험프리 보가트)와 (로렌)바콜인데 보기는 결국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했다. 4인조 코미디언 막스 형제의 맏형 그라우초는 시가를 태웠고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저항의 표시로 담배를 피웠으며 오드리 헵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긴 담배물부리를 요염하게 입에 물었었다. 또 케리 그랜트와 에이바 마리 세인트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모두 흡연하며 사랑의 언어전희를 즐겼다.
느와르 영화에 나온 요부들인 에이바 가드너, 베로니카 레이크, 리타 헤이워드 및 바바라 스탠윅 등도 모두 담배연기를 내뿜었는데 이들은 흡연을 성적 제스처처럼 이용해 남자들을 유혹했었다. 현대에 와선 샤론 스톤이 노팬티 차림으로 양다리를 번갈아가며 꼬아대면서 흡연, 앞에 앉은 형사들을 희롱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흡연장면은 ‘자, 항해자여’(사진)에서의 것이다. 여기서 흡연은 두 주인공인 베티 데이비스와 폴 헨리드의 실제적 접순이 없는 키스로 묘사된다. 로맨틱하기 짝이 없는데 내가 베티 데이비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흡연장면 때문이다.
이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에서의 담배와 흡연은 섹시한 소도구요 육감적인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비스와 헵번과 가드너가 담배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오금이 저려오는 성적 매력은 아마도 반감됐을 것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불쑥 나타난 옛 사랑(잉그리드 버그만) 때문에 술에 취해 테이블을 치며 통탄하는 보가트(‘카사블랑카’)가 담배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의 아픔의 진통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인가. 여자들은 담배를 피워 더욱 자극적이었고 남자들은 담배를 태워 더욱 사나이다웠다. 특히 로맨틱한 장면에서의 흡연은 레드 와인의 취기 구실을 하는데 이제 앞으로는 영화에서 두 연인이 맨송맨송하니 앉아 사랑을 하게 됐으니 그들의 건강상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무드는 색채가 바래고 말게 됐다.
‘악마의 콧구멍’이라고 불리는 담배가 인체에 해로운 것은 사실이다. 나도 왕년에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웠지만 담배에는 끽연자들만이 느끼는 맛과 멋이 있다. 특히 자고 일어나서 피우는 담배는 현기증의 쾌감을 준다. 마약과 다를 게 없다. 식후에 피우면 소화에 좋고 술 마시며 태우면 취기가 더 오르고 커피를 마시며 흡연하면 카페인과 니코틴에 이중으로 감관이 노근노근해 진다.
흡연하는 모습이 멋있다는 것은 미국 사람들보다 담배를 훨씬 더 많이 태우는 프랑스의 두 멋쟁이 배우가 보여줬었다. 이번 칸영화제서 전도연에게 주연 상패를 준 절세미남 알랭 들롱은 갱 영화에서 담배를 태우기 전 하모니카를 불듯 입술로 담배를 전신 애무했고 주먹코 장-폴 벨몽도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담배를 입 한쪽에 질끈 물고 인상을 썼었다. 아이들이 흉내를 낼만도 하다.
담배는 중독성과 치사성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사랑과도 같다고 하겠다. k.d. 랭은 ‘사랑은 담배와 같아’에서 그 것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그 것이 내 입술에 닿기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스릴을 몰랐지요. 사랑은 결국 사라지고 후회의 재만 남겨 놓는군요.’ 칭얼대는 랭의 음성이 담배 연기처럼 자욱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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