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6일로 100세가 되는 존 웨인(John Wayne)이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도 미 점령군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을 처벌하는 부시의 토벌대장이 됐을지도 모른다. 별명이 ‘듀크’(공작)였던 웨인은 극우보수파였다. 그는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는데 그래서 공산당 때려잡기를 주도한 매카시 시대 미국이념 보존 영화동맹을 조직하고 회장직을 맡았었다. 웨인이 극우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그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인 1968년 이 전쟁을 옹호하는 형편없는 영화 ‘그린 베레’를 감독하고 주연했다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직선적이요 솔직했던 웨인은 많은 웨스턴과 전쟁영화에서 전통적이요 보수적인 미국 정신을 대변했다. 소몰이와 군 경력이 없는 그가 이 두 장르를 통해 미국민들의 대표적 영웅이 됐다는 것이야말로 할리웃이 신화의 제작실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강건한 신체와 큰 키에 과묵했던 웨인은 미국민들에게 힘과 확신의 상징이었고 사나이들의 지도자요 정의 구현자였다. 그러나 나는 웨인의 웨스턴들은 즐기지만 그를 보면 ‘양키이즘’의 실물화를 대하는 것 같아서 인간적으로는 정이 안 간다.
매리온 마이클 모리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웨인은 현재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 인근의 글렌데일에서 자랐다. 웨인은 USC(풋볼 장학생) 재학 때 여름방학을 이용, 폭스사에서 잡일을 하며 후에 자신의 후견인이 된 존 포드 감독과 인간적 관계를 맺었다. 웨인은 포드가 키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둘은 평생 사제지간처럼 또 영화 동료로서 서로를 믿고 정을 나눴다. 웨인은 “난 포드의 밑에서 일할 때 그에게 ‘내가 무슨 옷을 입기를 바라오’라고 묻는 것 외에는 나머지 모두를 포드에게 맡긴다”면서 포드의 판단을 무조건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수십 편의 B급 웨스턴에 나오던 웨인을 대뜸 스타로 부상시킨 웨스턴 ‘역마차’(Stagecoach·1939)도 포드의 영화다. 이후 웨인은 기병대 3부작인 ‘아파치 요새’‘황색 리번’‘리오 그랜드’와 ‘아일랜드의 연풍’ 및 ‘그들은 소모품’ 등 12편 이상의 포드 영화에 나왔다.
웨인은 1940~50년대 포드의 웨스턴을 통해 자기 역에 깊이와 명료성을 주면서 연기력을 키웠다. 그러나 그가 금욕적인 자기 이미지에 비로소 새 의미를 부여한 영화는 하워드 혹스 감독의 웨스턴 ‘레드 리버’(Red River·1948)다.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공연한 영화에서 웨인은 냉정하고 원칙적인 소몰이 리더로 나와 심오하고 민감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연기를 본 포드는 “난 저 큰 X자식이 연기를 할 줄은 몰랐다”고 감탄했다.
웨인이 다시 혹스와 함께 만든 웨스턴 ‘리오 브라보’(Rio Bravo·1959·DVD 출시·사진)는 개봉 당시 비평가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받았으나 정말로 간단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영화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총잡이들을 맞아 외롭게 싸우는 보안관의 이야기로 딘 마틴과 릭키 넬슨이 나온다. 혹스는 이 영화를 게리 쿠퍼가 나온 웨스턴 ‘하이 눈’에 대한 반박으로 만들었다. 적을 맞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도움을 구걸하는 보안관 쿠퍼가 사나이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인도 혹스와 같은 의견이었다.
웨인이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는 웨스턴 ‘진정한 용기’(True Grit· 1969·DVD 출시)지만 이 상은 그때 암과 투병중인 웨인에 대한 동정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실 이 영화보다는 모두 포드가 감독한 ‘수색자’(The Searchers·1956)나 지미 스튜어트와 공연한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1962)로 상을 받았어야 했다.
웨인의 마지막 영화는 역시 웨스턴으로 그가 암을 앓는 총잡이로 나온 ‘마지막 총잡이’(The Shootist·1976). 그는 여기서 킬러의 총에 맞아죽는데 암으로 죽느니 차라리 총에 맞아 죽는 것은 웨인의 영화 생애에 걸맞은 마침표라고 하겠다. 웨인은 암과 투병할 때 “죽음의 공포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침대에 누워 내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주는 무기력감”이라고 말했었다.
가장 미국적인 사나이 웨인의 배우생활에 먹칠을 한 영화가 ‘정복자’(The Conqueror·1956)다. 그는 여기서 가는 콧수염을 한 파란눈의 징기스칸으로 나왔다. 나는 서울 명보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한심한 영화구나 하고 혀를 찼었다. 이 영화는 유타의 지하 핵 실험장 인근에서 찍었는데 웨인은 물론이요 그와 공연한 수전 헤이워드 및 감독 딕 파웰 등이 모두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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