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스승의 날은 5월9일이고 한국의 스승의 날은 5월15일이다. 옛날에는 스승과 아버지를 같이 여겨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교권이 급전직하해 학생이 선생에게 대들고 학부모가 자기 아이 나무랐다고 학교로 선생을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교권의 추락에는 선생들의 책임도 있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촌지다. 학부모가 주는 봉투에 넣은 돈을 받는 선생을 학생들이 존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자녀 교육에 극성인데 한국서 하던 버릇 못 버려 미국에까지 와서도 촌지를 건네려다 놀란 미국 선생한테 거절을 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촌지 때문에 한국에서는 제자들이 스승의 날에 선생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아름다운 행사를 하는 대신 아예 하루 폐교를 하는 학교들이 많다고 한다. 서글픈 현상이다.
마침 스승의 날을 맞아 오늘부터 1주일간 뉴아트 극장(310-281-8223)에서 공립학교 선생들의 사명감과 좌절과 희로애락을 그린 기록영화식 코미디 ‘분필’(Chalk)이 상영된다. 신참 선생이 교단에 선지 3년만에 50%가 퇴직을 한다는 미 공립고교 선생들의 학생과의 관계와 선생간의 관계 그리고 교직에 대한 애정과 가르침의 어려움을 마음을 주어가며 사실적이요 아주 우습게 묘사한 영화다.
영화는 텍사스의 해리슨 고교의 이야기를 4명의 선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의식이 너무 센 스트루프 선생은 ‘올해의 선생’이 되는 것이 지상목표이고 생기발랄한 여자 체육선생 웹은 연인이 없어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리고 막 교감이 된 레델선생은 새로 얻은 세력을 즐기나 너무 바빠서 밤 10시나 돼야 귀가한다. 그래서 지난 석달간 남편과 섹스를 못했다고 고백한다. 가장 우습고 딱하고 동정이 가는 선생이 이제 막 교사가 된 이혼남 역사선생 로우리(사진). 로우리 선생은 경험과 지도기술 부족으로 학생들 앞에 서면 말까지 더듬는다. 로우리 선생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이 지붕 위 닭 보는 소 눈들 같다.
로우리 선생은 셀폰 문제로 자기에게 대드는 학생의 부모를 만나러 가정방문을 한다. 로우리 선생은 이 집에서 문제 학생의 어머니가 제공한 포도주를 마시면서 대화로 만사를 잘 해결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보자니 내가 옛날에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시절이 생각났다. 난 서울사대를 졸업하자마자 인천의 남중고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와 독어를 가르쳤다. 독문학을 공부한 나는 고교에서는 독어를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쳤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상업선생이 도덕도 가르치던 때였다.
난 소위 총각선생으로 정열을 다해 가르쳤다. 다른 선생님의 시간까지 달래서 교재 외에도 영화와 음악까지 가르치면서 열심을 다했다. 그리고는 방과 후가 되면 낮에 교실에서 들여 마신 분필가루를 제거한다고 동료 선생들과 함께 대음했다.
어느 날 교무실로 내 담임반 학생의 어머니가 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작은 성의니 점심 식사라도 하시라”면서 겉에 한자로 ‘미의’라고 쓴 흰 봉투를 살며시 건넸다. 그것이 내가 받은 첫 촌지였는데 막걸리 값 정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혹처럼 달고 다니는 것이 선생시절과 한국서 기자시절 받은 촌지다. 액수라야 살림할 만한 것도 못되고 해서 술로 다 마셔버렸는데 가끔 옛날이 생각나면 속이 시원치는 않다. 원칙적으로는 선생이 촌지를 받아선 안 되겠지만 학부모가 자기 아이 가르치는 선생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저녁 값 정도의 촌지 수령을 대죄 취급하는 것은 너무 야박한 것 같다.
그 때 스승이 날이 되면 꼬마 제자들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고마워했었다. 제자가 가슴에 꽂아준 카네이션을 내려다보면서 참 보람 있는 직업이구나 하고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가르친다는 일은 직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고귀한 사명이다. 무릇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특히 교편을 잡는다는 것은 사명의식 없이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경하를 드린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