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LA 필의 새 시즌 프로그램 발표회장에서 그 때 LA 필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안된 콘서트 매스터 마르탕 샬리푸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샬리푸어는 작고한 조지 셀이 오랫동안 바톤을 쥐고 있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 굴지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출신.
나는 그에게 “왜 유서 깊은 클리블랜드를 떠나 LA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새로운 것을 찾아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 새로운 것이란 LA 필의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을 두고 한 말이었다.
LA라는 도시의 특성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감한 진취성이라고 하겠는데 이런 특징을 가장 뚜렷이 대변했던 사람이 살로넨이다. 살로넨이 지난 1992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LA 필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뒤 그는 프로그램에 과감하게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포함시키면서 이 악단을 역동적이요 모험적이며 자유분방한 세계적 악단으로 키워냈다. 뉴욕타임스가 아트판 커버스토리로 클래시칼 음악의 본향이 허드슨강 서쪽으로 대이동을 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LA 필이 며칠 전 불과 나이 26세의 베네수엘라 태생의 곱슬머리 베이비 페이스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사진)을 오는 2009년에 물러날 살로넨의 후임으로 선정 발표한 것도 새롭고 진취적인 것을 두려움 없이 취하는 LA의 성질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LA 변주곡’‘날개 위의 날개’‘불면증’ 및 피아노협주곡 등 최근 여러 신곡을 작곡한 살로넨(48)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때가 되면 작곡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해 왔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 오는 2008~09시즌을 마지막으로 LA 필을 떠나지만 LA 필과 계속관계를 유지하며 LA에 살겠다고 말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세계적 교향악단 지휘 경력이 미천한 두다멜을 LA 필이 맞아들인 것은 클래시컬 음악계에서는 지진으로 여기고 있다. 두다멜이 LA 필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할리웃 보울 연주 때였는데 그 때 단원들은 두다멜의 에너지로 응집된 정열적인 지휘에 완전히 매료됐었다고 데보라 보다 LA 필 이사장이 최근 있은 클래시컬 음악 전문방송 KUS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뒤로 보다는 두다멜을 라 스칼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따라다니며 관찰했고 그의 가족과도 함께 지내며 인간적 면모도 살펴봤다고. 보다와 살로넨이 두다멜을 차기 LA 필 상임지휘자로 선택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 1월4일 그의 디즈니 콘서트 홀 데뷔 지휘였다.
나도 같은 날 두다멜의 지휘를 보고 “와”하고 경탄했던 기억이 난다. 두다멜은 코다이와 바르토크 및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지휘했는데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그의 온 몸에서 전류가 흘렸다.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까지 그의 에너지가 와 닿으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는 지휘였다.
두다멜은 혼신의 정열과 힘을 쏟아 붓느라 얼굴까지 빨개졌는데 그야말로 하나의 불덩어리였다. 그의 지휘하는 모습은 마치 필생의 열연을 하는 1인극의 주연배우와도 같았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아우성에 가까운 열광적인 반응으로 두다멜을 반겼다. 살로넨은 이 지휘를 보고 “대츠 잇”이라고 두다멜에게 자기 바톤을 넘겨주기로 확정했다고 한다. 분더킨트(신동)의 탄생이다.
음악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두다멜은 12세 때부터 지휘를 시작, 현재 고국의 시몬 볼리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다. 그가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2004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구스타프 말러 지휘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부터였다. 이 때 심사위원단에 살로넨과 살로넨을 발굴해낸 어네스트 플라이쉬만 전 LA 필 이사장이 포함돼 있었다. 살로넨은 이 때 두다멜이 지휘하는 말러의 제5번 교향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두다멜은 스웨덴의 고텐부르크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이기도 하다.
뉴욕 필과 시카고 심포니도 차기 상임지휘자로 두다멜을 노렸다고 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청년인 LA 필이 20대의 두다멜을 맞아들인 것은 참 잘 이뤄진 궁합이다. 이제 LA 필과 두다멜은 살로넨의 전통을 이어가며 보다 젊은 관객과 현대적인 음악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라틴 색채가 짙은 음악을 보다 많이 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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