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4일 토요일 아침에 세빌리아의 꾀 많고 명랑한 이발사 피가로를 만나러 버뱅크의 AMC 16 극장(125 E. Palm Ave.)엘 찾아갔다. 아침 9시 반쯤에 도착했는데 벌써 극장 매표소 앞에는 오페라 팬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영화관에서 무슨 오페라이지’라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이 날 이 극장에서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공연하는 로시니의 희가극 ‘세빌리아의 이발사’(The Barber of Seville·사진)를 고화질 카메라로 찍어 현지와 동시에 상영했다. 뉴요커들은 하오 1시30분부터 메트 오페라하우스에서 그리고 앤젤리노들은 상오 10시30분부터 버뱅크의 극장에 앉아서 함께 이 신나고 재미있는 오페라를 구경한 것이다. 참으로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메트 오페라 공연을 카메라로 찍어 미 전국 영화관에서 뉴욕 공연과 동시에 상영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이브 인 HD’는 지난해 12월30일 모차르트의 ‘마적’으로 시작됐다. 토요일에 미 전국의 수백개 극장과 유럽과 일본 등지의 극장에서 상영되는데 시작한지 몇 개월 안 돼 대중의 큰 인기를 얻어 계속 극장 수를 늘리고 있다.
일종의 하이텍과 하이아트의 융합인 이 획기적 프로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오페라 팬들의 연령층을 낮추고 또 오페라를 보다 대중화 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기획은 대뜸 성공했는데 ‘세빌리아의 이발사’ 경우 전미 275개 극장서 상영돼 총 85만3,836달러를 벌었다(입장료는 성인 18달러, 아동 15달러). 인기가 좋아 대부분의 오페라를 앙코르 상영하고 있다.
극장 안은 보통 영화관에 올 때 입는 평상복 차림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스피커에서는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작 10분 전쯤 되니까 카메라가 관객이 들어오는 메트 오페라 극장 내부와 피트 속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비춰준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영화관 관객을 위한 작품의 의상 소개가 있었는데 음향이 매우 불량해 오페라 공연 음향도 저러면 어쩔까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노래와 연주 소리는 입체감이 뚜렷했다. 재치와 유머를 갖춘 쏜살같이 빠른 서곡(지휘 마우리치오 베니니)이 끝나자 LA와 뉴욕의 관객들이 동시에 박수를 쳤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동네 이발사요 약장수요 치과의사요 잡화상으로 바람둥이이자 뚜쟁이인 피가로(피터 마테이)가 주인공이다. 못하는 일이 없는 말 많은 약방의 감초같은 피가로가 젊은 알마비바 백작(완 디에고 플로레스)과 의사 바르톨로의 피후견인인 예쁜 로지나(조이스 디도나토)를 결합시켜 주려고 온갖 기지를 짜내면서 벌어지는 경쾌한 코미디다. 알마비바와 로지나의 사랑은 로지나의 후견인으로 로지나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는 나이 먹은 바르톨로(존 델 칼로) 때문에 시련을 겪지만 피가로의 지혜로 만사형통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이 오페라의 속편이다.
시종일관 즐겁고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노래와 음악으로 이어졌는데 마치 음표들이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 위에서 튀는 콩알처럼 맹렬히 약동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메트 오페라의 신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매우 섹시하고 대담한 수작이었다. 세트와 의상도 훌륭했는데 가수들이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불렀다. 특히 키가 큰 마테이가 피가로 역을 볼륨 큰 음성으로 노래하며 능청스럽게 잘 해냈다. 페루 태생의 디에고 플로레스와 디도나토의 음성도 아주 깨끗하고 고왔는데 둘이 썩 잘 어울렸다. 델 칼로의 음량도 풍성했다. 그리고 말한마디 안하는 축 처진 헝겁인형 같은 바르톨로의 하인 모습도 재미있다.
실제 공연을 보는 것보다 영화로 보는 오페라가 더 났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이 영화 오페라는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희한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꼭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실제 오페라의 관객과 달리 빠른 컷과 클로스-업 그리고 다각도로 찍은 카메라에 의해 오페라의 모든 부분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다. 로지나의 풍만한 젖무덤 사이의 계곡과 바르톨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까지 확실히 보였다.
오페라의 문외한들도 금방 친숙해질 수 있는 영화 오페라로 어린 자녀들에게 좋은 오페라 입문 코스가 될 수 있는 프로다. 올 시즌 마지막 공연작은 푸치니의 사랑과 질투, 살인과 음모가 있는 1막짜리 3편을 묶은 ‘일 트리티코’(Il Trittico)로 오는 28일에 같은 극장에서 상영된다. 스테디엄식 자리에 편안히 앉아 팝콘을 먹으며 바로 코앞에서 공연되는 입체음향 오페라를 생생하게 보는 기분이 아주 괜찮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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