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할리웃의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최대 이변은 남자조연상 부문에서 72세의 베테런 앨란 아킨이 에디 머피를 제치고 상을 탄 것이라고 하겠다.
별난 가족에 관한 소품 코미디 ‘리틀 미스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에서 마약을 즐기고 상소리를 밥 먹듯 하나 마음은 자상한 할아버지로 나온 아킨은 최종 수상자로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언더독이었다. 머피는 뮤지컬 ‘드림걸스’(Dreamgirls)에서 인기가 저물어가는 가수로 나와 본인이 직접 노래까지 부르며 열연, 골든글로브상 등 상이란 상은 휩쓸어 오스카상 수상은 떼놓은 당상이다시피 했다.
머피의 탈락은 이날 ‘드림걸스’가 여러 면에서 받은 수모의 한 부분일 뿐이다.‘드림걸스’는 오스카상 후보에서 총 8개 부문에 올라 최다 후보작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과 감독상 후보에서는 탈락됐었다. 이날‘드림걸스’가 이 중 받은 것은 여자조연(제니퍼 허드슨)상과 음향믹싱상 등 달랑 2개.
머피가 받았을 타격만큼‘드림걸스’를 만든 드림웍스에 타격이 컸을 것은 주제가상 부문이다. 5개의 주제가상 후보 중 무려 3개가 오른‘드림걸스’는 이날 오스카상을 탄 기록영화‘불편한 진실’의 주제가‘아이 니드 투 웨이크 업’(멜리사 에서리지 노래)에 상을 양보해야 했다. 뮤지컬의 주제가들이 기록영화의 노래에 상을 빼앗겼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머피의 탈락은 현재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그가 나온 볼썽 사나운 코미디 ‘노빗’(Norbit)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드림걸스’에서 모처럼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머피는 여기서 뚱보용 특수 옷을 입고 말과 행동이 상스럽기 짝이 없는 거구의 여자 라스푸티아로 나와 비평가들의 질타를 받았었다. 라스푸티아의 모습과 언어행동이 구역질이 나도록 징그럽고 냄새가 나 점잖은 오스카 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갱영화 ‘디파티드’(The Departed·사진)의 잔치였다. 작품, 감독, 각색, 남우조연 및 편집상 등 총 5개 부문서 후보에 올라 남우조연 부문을 제외한 4개를 싹쓸이 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작품상 부문은 가장 점치기가 어려웠다. 5개 후보작 중 ‘디파티드’와 ‘바벨’ 및 ‘리틀 미스 선샤인’이 최종까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였었다. 홍콩 영화 ‘무간도’의 미국판인 ‘디파티드’는 유혈폭력과 상소리가 자심한 상업적인 리메이크 장르 영화여서 메시지 영화를 좋아하는 오스카 회원들이 과연 이 영화에 상을 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 다녔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디파티드’의 수상은 아카데미가 그동안 감독 마틴 스코르세지(64)와 제작자 그래엄 킹에게 행한 푸대접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스코르세지는 현존하는 미 최고의 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과거 다섯 차례나 수상 후보에 올랐다 고배를 마시고 이번에 여섯번째 후보에 올라 상을 받았다.
특히 스코르세지와 킹은 2002년에 ‘뉴욕의 갱’으로 2004년에는 ‘비행사’로 각기 감독상과 작품상 후보에 올랐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당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나친 오스카 캠페인이 지적됐었다. 오스카 회원들은 과대선전을 싫어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번에 ‘드림걸스’가 아카데미로부터 외면을 당한 큰 이유로 과대선전을 들고 있다. 그래서 킹과 스코르세지는 이번에 작품 선전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스코르세지는 영화를 위한 인터뷰도 사절했었다. 그 결과 ‘디파티드’는 32년 전 ‘대부 II’가 첫 오스카상을 탄 뒤로 갱 영화로서는 두번째로 작품상을 타는 기록을 냈다. 이 영화는 DVD로 나왔다.
이날 머피만큼이나 속이 상했을 사람이 ‘비너스’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피터 오툴(74)이었을 것이다. 오툴은 이번까지 모두 8번째 후보에 올랐는데 상은 ‘스카틀랜드의 마지막 왕’(The Last King of Scotland)에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으로 나온 포레스터 위타커가 가져갔다.
오툴은 지난 2003년 아카데미가 그에게 명예상을 준다고 하자 “난 아직 주연상을 탈 가능성이 있다”며 상을 거절했다가 마음을 돌릴 정도로 주연상을 탐냈었다. 나는 지난 22일 미라맥스가 오툴 등을 위해 마련한 파티에서 모처럼 그를 만났다. 학창시절부터 존경해 오던 배우여서 인파를 뚫고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면서 (손이 찼다) “만나서 정말 반갑다”고 말을 건넸다. 오툴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시상식을 중계하는 TV로 오툴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이 이 위대한 배우를 앗아가고 있구나 하는 상념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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