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팝송은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쿠르트 바일(1900~1950)이 작곡하고 미국의 극작가 맥스웰 앤더슨이 작사한 ‘세프템버 송’(September Song)이다.
독일서 오페라를 작곡한 바일은 유대인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서 뮤지컬을 작곡했는데 ‘세프템버 송’은 뮤지컬 ‘니커바커 할러데이’에 나온다. 원래 노래는 영화감독 존 휴스턴의 아버지로 명우였던 월터 휴스턴이 불렀는데 노래가 빅히트를 하면서 그 뒤로 프랭크 시나트라와 토니 베넷 등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불렀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중학생 때 본 로맨스 영화 ‘9월의 연정’(September Affair·1950)에서였다. 두 연인 데이빗(조셉 카튼)과 마니나(조운 폰테인)가 들른 나폴리의 언덕 위 술집에서 틀어놓은 유성기의 음반에서 이 노래가 나온다.
뮤지컬은 코미디인데 노래는 청승맞기 짝이 없다. 이런 쓸쓸한 기분은 노래를 부르는 휴스턴의 쇳소리 나는 떨리는 듯한 피곤한 목소리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5월부터 12월까지는 참으로 길지요/그러나 9월이 오면 날들은 짧아진답니다/가을 날씨가 나뭇잎들을 불태우면 이미 기다림의 놀이를 할 시간은 없지요/왜냐하면 날들은 점점 사라져 귀중한 몇 날만이 남기 때문이지요/세프템버, 노벰버/ 그리고 이 귀중한 몇 날들을 나는 당신과 함께 보내렵니다.’
바일은 나치에 의해 ‘타락한 음악가’로 낙인찍히기 전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함께 걸작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The Threepenny Opera)와 ‘마하고니시의 흥망’(Rise and Fall of the City of Mahagonny·1930)을 작곡했다. 고전적 오페라의 틀을 기피하고 보다 자유롭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뮤지컬 스타일의 오페라를 만든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오페라라기보다 격상된 카바레 음악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여기서 거지 왕초 맥이 부르는 ‘칼잡이 맥’(Mac the Knife)은 팝송이 되다시피 했는데 바비 다린이 썩 잘 부른다.
‘마하고니시의 흥망’은 오페라이면서 뮤지컬의 색채가 강한 일종의 튀기 오페라다. 타락한 현대인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자 풍자극으로 성적으로 노골적인 부분이 많아 초연 때 지휘를 맡기로 했던 오토 클렘페러가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지휘를 거절했다고 한다.
지난 10일 LA 오페라가 무대에 올린 ‘마하고니시의 흥망’(사진)은 매우 섹시하고 자극적이요 또 생기발랄했다. 두 명의 남자 범죄자를 데리고 다니는 탐욕스런 범법자요 황금에 눈이 먼 색주가 여주인 레오카디아 베그빅(패티 루폰)이 임자 없는 땅에 세운 죄악의 도시 마하고니(도로표지 숫자가 666이다)에 모여든 온갖 군상들의 탐욕과 욕정과 싸움과 방탕과 부패와 타락을 블랙 코미디식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베그빅에 필적할 만한 여자로 이 도시를 찾아온 사람이 창녀 제니(오드라 맥도널드). 이 두 여자와 알래스카에서 7년간 벌채를 해 돈을 번 지미(앤소니 딘 크리피)가 주인공이다.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바일의 음악은 정통 오페라와 뮤지컬, 팝과 재즈와 스윙 및 현대음악 그리고 독일의 품파 음악까지를 혼성한 장르의 총망라였는데 아무래도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연출을 맡은 존 도일은 시간대를 1차 대전 이후와 1950년대의 베이가스 및 현재로 구분, 현대적으로 해석했는데 대단히 관능적이요 선정적이다(‘돈 많은 남자들을 위한 호텔’ 네온간판이 남자 성기 모양이다.) 짧게 나눠진 각 장이 시작되기 전 해설자의 해설이 스피커를 통해 나왔는데 전체적으로 야하고 번쩍거리면서도 메시지가 매우 불길하다. 프리츠 랭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예언적 운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마하고니는 모든 현대의 도시의 대명사라고 하겠다.
맥도널드와 루폰 그리고 도일은 모두 토니상 수상자들. 맥도널드는 이상을 무려 4번이나 탔는데 대단히 강렬하면서도 풍성한 가창력이었다. 음성에서 짙은 초컬릿 빛이 났는데 볼륨 있는 몸으로 대담한 성적 제스처를 보여 주었다. 데카당한 작품이다. 히틀러 졸개들이 싫어했을 법도하다. 그러나 루폰의 음량과 음색은 실망스러웠다.
지휘는 몬트리올로 자리를 옮긴 켄트 나가노에 이어 새 LA 오페라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제임스 콘론이 했는데 별 특색이 없는 연주였다. 1막이 끝난 뒤 주위의 자리들이 비었는데 베르디와 푸치니에 집착하는 정통 오페라 팬들에겐 이질감을 줄 수도 있는 오페라다. 오페라는 3월4일까지 공연한다.
박흥진의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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