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작년도 각 부문 최고에게 주는 제32회 시상만찬이 지난 14일 저녁 센추리시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서 열렸다.
시상식 시작 전 하오 6시부터 마련된 칵테일 아워는 동료회원과 수상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기타 참석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초만원을 이루었다. 시드 게이니스 아카데미 위원장과 티에리 프르모 칸영화제 예술감독도 참석했는데 지난해보다 수상자들의 명성이 강렬했던 탓인지 보기 드문 대성황이었다.
칵테일 아워에 내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 독일 영화 ‘타인들의 삶’에 나온 세바스티안 코호. 이 영화는 두 예술가 연인을 도청 감시하는 동독 정보부 슈타시 요원의 드라마다. 나는 극중 감시당하는 연극연출가로 나온 코헨과 악수를 나눈 뒤 “나는 한국에서 군사독재 정부를 경험, 영화 속 당신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자 코헨은 “그렇다. 이 영화는 비단 동독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지닌 작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에서의 독재자 이디 아민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탄 포레스트 위타커와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지금 온갖 상을 휩쓸고 있어 오스카상 수상도 떼놓은 당상. 내가 “당신 오스카상 수상소감 준비했느냐”고 묻자 “후보로 지명이나 돼야 준비할 예정”이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날 수상소감에서 만찬에 함께 참석한 부모에게 감사를 돌렸는데 아들의 얘기를 듣던 아버지가 눈물을 보였다.
이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부인과 함께 입장. 나는 그를 최근 이미 두 차례나 만나 이젠 구면인 셈. 이스트우드는 우리가 최우수작으로 뽑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감독이자 제작자로 참석했는데 공동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나란히 상을 받았다.
‘여왕’으로 여우주연상을 탄 헬렌 미렌(60)은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테일러 핵포드(레이)와 ‘여왕’의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와 함께 왔다. 그녀는 수상소감에서 “아직도 나와 자기를 원하는 남편에게 감사한다”고 말해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렌은 원래 섹스농담을 잘 하는 여자다.
우리는 골든 글로브와 달리 밥을 먹은 뒤 시상식을 개최한다. 사회는 농담 잘 하는 회장 헨리 쉬핸이 맡아 위트를 섞어가며 진행했다. 매년 그렇지만 문제점은 시상자인 동료회원들의 장광설. 원래 기자들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존재들이긴 하지만 상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말이 많아 때론 몸 둘 바를 모를 지경.
식중 칵테일이 마시고 싶어 홀에 나갔다가 위타커와 공동으로 남우주연상(보랫)을 탄 사샤 배론 코엔을 만났다. 해괴망측한 코미디의 주인공과 달리 젠틀맨이었는데 내가 코엔에게 “당신을 비판한 버라이어티 편집국장 피터 바트의 기사를 읽었느냐”고 묻자 “안 읽었는데 뭐라고 썼냐” 며 약간 염려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신이 엉뚱한 대답만 해 피터가 삐진 것 같더라. 그러나 당신의 독립과 개성을 지키길 바란다”며 그를 응원하자 “고맙다”고.
이 날 감동적이었던 것은 루마니아 영화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으로 여우조연상을 탄 루미니타 게오르기우의 수상소감. 그녀는 상을 받으러 루마니아에서 날아왔는데 “이런 날이 오기를 꿈꿨다”며 울먹여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만찬이 끝난 뒤 나도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고 “정말 축하한다”고 말하자 루미니타는 그때까지도 물기가 밴 눈으로 날 바라보며 “고맙다”며 겸손해 했다. 수상자마다 모두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니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생애업적상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내년도 같은 시간에’와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을 감독한 로버트 멀리간이 받았다. 그는 이 날 코네티컷에서 날아왔는데 수상 소감에서 “그레고리 펙(‘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의 주연)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면서 “그는 정말 관대하고 함께 있기에 늘 기쁜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 날 펙의 부인인 베로니크와 딸 세실리아가 멀리간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마지막으로 작품상 수상자인 이스트우드는 자기 수상소감에 이어 스필버그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권하자 스필버그는 두 팔로 당신이 하세요 라는 제스처를 쓰며 사양. 그러자 이스트우드는 “LAFCA 회원들 이제 끝났으니 난 여길 나가겠소”라며 웃겼다. 3시간이 훨씬 넘는 만찬이었으니 좀이 쑤셨을 만도 하다. (사진 왼쪽부터 이스트우드 부부, 사샤 배론 코엔의 약혼녀로 배우인 이슬라 피셔, 스필버그와 코엔)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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