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C의 집에서 새해맞이 저녁을 먹으면서 음악 얘기를 하다가 제스처가 요란한 음악인들이 화제로 올랐다. 이런 사람들로 새라 장과 정경화, 주빈 메이타 및 랑 랑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제스처가 화려하다 못해 너무 요란하면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제스처가 너무 심한 음악인들의 공연을 감상할 때면 가끔 눈을 감고 듣는다.
그날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까닭은 지난 4일 25세의 나이로 LA필에 데뷔한 베네수엘라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사진) 때문이었다. LA필의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을 발굴한 LA필의 전 수석 디렉터 어네스트 플라이쉬만이 “내가 만나 본 수백명의 지휘자 중에서 20대 초반에 그와 같은 역량을 지닌 지휘자는 두다멜과 살로넨 그리고 사이몬 래틀(베를린필 상임지휘자)뿐”이라고 칭찬한 두다멜이어서 목요일인데도 디즈니 콘서트홀은 만당을 이루었다.
곱슬머리에 베이비 페이스를 한 두다멜은 이날 두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와 바르토크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지휘했는데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그의 온 몸에서 전류가 흘렀다. 보는 사람에게까지 그의 에너지가 와 닿으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두다멜은 혼신의 정열과 힘을 쏟아내느라 얼굴까지 빨개졌는데 그야말로 불덩어리였다. 그의 이런 열정적인 지휘는 첫 곡인 코다이의 ‘갈란타의 춤‘의 집시풍 멜로디와 썩 잘 어울렸다. 자유로움과 생명력으로 헝가리 민요를 토대로 한 이 감미롭고 로맨틱하면서도 경쾌한 곡을 마구 풀어헤쳤다.
“와우”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날으는 나비 같이 사뿐하면서도 깊고 명확하고 정열적인 살로넨의 대조적인 지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지휘를 본 LA타임스의 음악 평론가 마크 스웨드는 “두다멜은 오케스트라를 이끌지도 또 그 것과 교호작용하지도 않는것 같았다. 그는 1인 오케스트라였다”고 칭찬을 했다.
스웨드의 말처럼 두다멜은 마치 필생의 열연을 하는 1인극의 주연배우 같았다. 눈이 번쩍 띄는 지휘임엔 분명하나 음악감상에 다소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직 젊은 탓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가 이 타고난 신선한 재능을 세월이 가면서 연마하면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되리라 믿는다.
두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적이요 비감하고 또 강렬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지휘할 때는 두다멜은 독주자 예핌 브론프만에게 음악을 맡기다시피 하고 자신은 뒷전에 서 있었다. 상당히 겸손한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적 우수가 흠뻑 젖은 곡을 브론프만은 힘과 서정성과 유연함을 잘 배합해 가며 연주했는데 연주자의 손가락이 부러진다는 피날레에선 검고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한 무기력감 마저 들었다. 이날 연주는 바르토크의 다색의‘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끝났다.
음악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두다멜은 베네수엘라의 독특한 음악교육제도인 ‘체계’(System)의 산물이다. 1975년에 만들어진 ‘체계’는 대부분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주고 음악교육을 시키는데 지금까지 무려 50만명이 이 교육을 받았다. 드럭과 범죄에 빠져들 아이들을 음악으로 구원하고 있는데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무려 200여개의 아동 및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한다.
13세 때 고향 마을 실내악단의 지휘자로 데뷔, 15세 때 주립 청소년 오케스트라 그리고 17세 때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으며 현재 시몬 볼리바 청소년 오케스트라(올 가을 LA에 머물며 연주를 한다)의 상임지휘자인 두다멜을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사람은 살로넨과 플라이쉬만이다. 2004년 둘은 독일 밤베르크의 구스타프 말러 지휘 경연대회의 심사위원들로 초빙돼 두다멜에게 1등상을 주었다.
2005년 할리웃 보울에 데뷔했고 오페라의 성지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돈 지오반니’를 지휘했다. 두다멜은 올해 뉴욕필에 데뷔하는데 오는 2009년 로린 마젤 현 뉴욕필의 상임지휘자가 물러나면 두다멜이 바톤을 이어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최근 두다멜에 관해 대서특필한 LA타임스가 보도했다. 두다멜은 지난해 스웨덴의 고텐부르크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수락했는데 그가 이보다 더 유명한 라 스칼라필의 지휘자 자리를 사양한 까닭은 아직 젊으니 압력과 비평가들의 눈초리를 피해 레퍼터리와 경험을 쌓으라는 측근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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