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모두 몇 편의 영화를 봤나 알아보려고 노트를 들쳐봤더니 총 409편이 적혀 있다. 일주일 내내 밤낮없이 영화를 보다 보니 한 해의 초반에 나온 영화는 거의 기억에서 사라져 몇 년 전부터 본 영화들을 번호를 매겨 기록하고 있다.(오스카상 후보감인 영화들이 연말에 쏟아져 나오는 까닭도 이 기억력과 직결돼 있다.)
그 많은 영화 중에 시간이 지나서도 가슴에 남는 영화란 그리 많지 않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그런 탓인지 지난해 경우 관객수가 급감, 할리웃은 “영화 장사 망했다”고 한탄을 했었던 것에 반해 올해는 관객수와 흥행 수입이 모두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이는 관객은 좋은 영화가 있으면 극장엘 온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내가 올해 본 영화 중 보면서 이것이 나의 올해 베스트 원이라고 직감했던 영화가 타드 필드 감독의 소품 ‘작은 아이들’(Little Children·사진)이다. 미 교외에 사는 각기 어린 자녀를 둔 두 쌍의 젊은 부부의 불륜의 관계를 통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중산층의 삶의 균열을 어둡고도 새카만 유머를 곁들여 만든 강렬한 영화다. 나는 염세적이어서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데 이 영화는 해피엔딩식으로 끝나지만 가정을 버리기로 결심했던 주인공들은 가슴에 감정의 앙금을 그대로 안은 채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진짜 해피엔딩은 아니다.
(2)‘이오 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와 ‘우리 아버지들의 기’(Flags of Our Fathers)-태평양 전쟁 이오 지마(유황도) 전투를 미국측과 일본측 시각에서 각기 본 두 영화. 모두 반전영화로 ‘이오 지마-’가 ‘우리 아버지들-’보다 감정적으로 더 내밀하고 강렬하다. 두 영화를 모두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장인적 솜씨가 빛난다.
(3)‘드림걸스’(Dreamgirls)-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의 영화판으로 열창과 열연이 있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작품. 특히 이 영화로 데뷔한 제니퍼 허드슨의 오페라 가수 뺨치는 노래 솜씨가 거의 가공스럽다.
(4)‘바벨’(Babel)-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의 작품. 미국, 멕시코, 아프리카 및 일본 등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드라마가 사냥총 하나로 인해 서로 연결된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 너무 말끔한 것이 흠이나 인간성을 호소하는 정열적 작품이다.
(5)‘타인들의 삶’(Lives of Others)과 ‘목신의 미로’(Pan’s Labyrith)-‘타인들의-’은 두 예술가 연인을 감시하다 그들의 삶에 빨려드는 동독 정보부 요원의 감정적 드라마로 독일 영화.
‘목신의-’는 스페인의 프랑코 시대 내전 때 전쟁의 공포와 횡포를 피해 환상의 세계로 여행하는 소녀의 어둡고 신비한 마법적 사실주의 영화. 스페인과 멕시코 합작. 올해 본 외국어 영화 중 최고들이다.
(6)‘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와 인류에게 곧 닥칠 대재앙에 관한 경고. 앨 고어 전 부통령의 계몽 강연을 기록한 교육적 영화로 재미만점.
(7)‘15세 성년식’(Quinceanera)과 ‘오리사냥 철’(Duck Season)-LA 에코팍 동네에 사는 멕시칸 커뮤니티의 사실적 삶을 15세난 멕시칸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린 솔직하고 신선하고 활기차게 그린 보석 같은 영화다.
‘오리 사냥철’은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아파트에 사는 10대 초반의 두 친구와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몇 사람의 소묘. 흑백으로 시치미 뚝 따는 스타일을 했는데 우습고 허전하고 소박하다. 거의 초자연적 분위기를 지닌 사랑스런 영화다.
(8)‘여왕’(Queen)과 ‘비너스’(Venus)-‘여왕’은 다이애나 사고사 후 이에 대처하는 엘리자베스 II 여왕 일가의 냉담한 태도와 국민의 뜻을 모르는 여왕 일가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토니 블레어 수상간의 갈등과 궁극적 화해의 영국 드라마. 여왕역의 헬렌 미렌이 오스카상을 탈 확률이 90%를 넘는다.
‘비너스’는 런던에 사는 7순의 배우가 자기 친구의 19세난 교양 없는 증질녀를 몸과 마음으로 모두 탐내는 일종의 ‘메이-디셈버’ 로맨스 드라마로 역시 영국 영화. 노배우역의 피터 오툴의 연기가 우습고 연민스럽다.
(9)‘그림자 군대’(Army of Shadows)-프랑스의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1969년작. 나치 점령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의 실화 저항운동. 미국에서 올해야 개봉됐다.
(10)‘끽연 감사합니다’(Thanks for Smoking)-담배제조회사의 구린 이면을 짓궂게 파헤친 블랙 코미디.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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