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흘이 지나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의 명절이지만 이제는 종교를 떠나 보통 사람들의 명절이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한국에는 통금이 있는데다가 즐길 명절이 많지 않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주당들은 술 마시고 고성방가하며 예수의 생일을 즐기곤 했다.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생일 축하였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을 주고받으며 감사와 사랑의 뜻을 표한다. 오늘과 내일 백화점과 선물가게는 미처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지각생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슴 찡한 감동을 주는 선물은 아마도 O. 헨리의 단편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에서 젊은 부부 짐과 델라가 서로에게 준 선물일 것이다. O. 헨리의 글 중 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마지막 잎새’와 함께 사람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소설은 사랑은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뜻을 가르쳐 주고 있다.
뉴욕에 사는 짐과 델라는 가난은 하지만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이. 델라는 어깨 아래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탐스럽고 아름다운 긴 머리칼을 지닌 미녀요, 말단 장부정리사원인 짐은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다. 짐이 아내 다음으로 아끼는 것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회중시계.
크리스마스가 되면서 둘은 서로 그동안 눈여겨 보아두었던 선물을 산다. 델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던 머리칼을 팔아 백금시계 줄을 사고 짐은 시계를 팔아 고급 빗을 산다. 둘은 머리칼 없는 빗과 시계 없는 시계 줄을 서로 교환하면서 자기들의 실수(?)를 크게 웃는데 창밖에서 캐롤이 울려 퍼진다.
나는 며칠 전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보다가 콧등이 시큰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짐과 델라가 서로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이 서로를 몹시 사랑해서 그렇겠지만 주급 17달러짜리 짐이 25달러짜리 빗을 사고 델라는 제2의 생명과도 같은 머리칼을 잘라 22달러나 하는 시계 줄을 산 것이 나로 하여금 부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는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면서 지출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얼마짜리를 선물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선물의 의미가 전도된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은 마음의 선물인데 마음을 달러로 환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책 1권, CD 1장 또는 DVD 1편이어도 족하다.
날이 갈수록 모든 것이 물질화하고 소비중심화 해 우리는 비싼 게 최고인 세상에 살고 있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서 주선태가 바람난 유부녀를 유혹하려고 양품점에 가 “무조건 최고급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며칠 전 TV에서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점점 더 비싼 물건을 요구한다는 문제가 논의됐었다. 한 참석자는 이런 현상은 더 비싼 것을 바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부모에게 큰 책임이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감사의 리허설을 시킬 것을 권했다.
최근 USA투데이는 통계를 인용, 6~8세의 30%가 부모가 직접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는 대신 선물카드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9~11세에 가면 46% 그리고 15~17세에 가서는 68%에 이른다.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잡지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통계에 대해 “이는 아이들마저도 비즈니스화 하고 소비중심화 하고 있다는 우울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의 포장을 뜯을 때 느끼는 기대감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음악관계 홍보담당자에게 20달러짜리 스타벅스 선물카드를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보냈다. 얼마 후 카드 답장이 왔는데 고마워하는 마음이 글에서 넘쳐흘렀다. 작은 선물의 보람을 절실히 느꼈다.
독자 여러분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린다. ‘동방박사의 선물’(사진)과 ‘마지막 잎새’와 함께 O. 헨리의 다른 단편 ‘경찰과 성가’와 ‘클래리온 콜’ 및 ‘인디언 추장의 몸값’ 등을 영화로 만들어 묶은 DVD ‘O. 헨리의 풀 하우스’(O. Henry’s Full House)가 나왔다. 가격도 딱 20달러.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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