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80년 5월에 미국에 와 자주 찾았던 극장이 크렌셔 남쪽에 있던 코쿠사이 극장이었다. 일본 영화 전용관으로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일본 영화들을 영어자막과 함께 볼 수 있어 주말이면 자주 구경 갔었다.
지금 기억에 남는 영화가 지팡이 속에 칼을 넣고 다니는 맹인 안마사 ‘자토이치’ 시리즈다. 상거지 차림에 찐빵처럼 생긴 카추 신타로가 번개처럼 지팡이 속에서 칼을 뽑아내 적을 베는 액션이 정말 멋있었다. 코쿠사이 극장 외에 다운타운의 한 후진 극장에서도 일본 영화를 상영했었다. 여기서는 준 포르노 영화와 야쿠자 영화 등 2~3편을 돌려가며 상영했다. 1편 값에 2~3편을 봤는데 관객들이 서서 볼 정도로 장사가 잘 됐었다.
그러나 일본 영화관들은 일본인들의 이민사가 길어지고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인기를 잃고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요즘 유일하게 옛날 일본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리틀 도쿄에 있는 일미문화센터 전용극장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특별 영화제 때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는 게 없던 코리아타운에서 거의 유일하게 없던 것이 한국인 전용극장이었다. 코리아타운이 이 정도로 커졌으면 한국 영화관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마침내 그 것이 생겼다. 영화광인 내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달 17일 윌셔와 뉴햄프셔 코너(3240 윌셔) 건물 3층에 개관한 한국영화관 M Park 4(대표 김병학)를 둘러보려고 지난 2일 점심 때 극장을 방문했다. 주말과 평일 하오 5시30분 이후에 무료 주차할 수 있는 극장 옆 주차장(3200 윌셔)에 차를 세우고 3층에 올라가 극장 마케팅 매니저 브라이언 리의 안내로 극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를 열 수 있는 두 개의 홀로 구성된 갤러리와 구내매점 그리고 대형 화면에 예고편을 상영하는 휴게실 등의 공간이 널찍했다. 160석부터 250석까지로 마련된 4개의 스크린(사진)은 의자가 스테디엄 방식. 앉아보니 시야가 막히지 않고 편안했다.
내가 극장을 찾았을 때는 한국 영화 ‘타짜’와 007 시리즈 ‘카지노 로열’이 상영 중이었다. ‘카지노 로열’이 끝나 불이 켜지면서 두 노부부가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이씨는 “미국 영화에 한글자막을 넣어 상영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관객들이 노년층”이라고 알려주었다. 영화가 보고 싶어도 영어 때문에 못 가던 사람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영어자막은 한국 배급사의 미주지역 배급 문제로 제공되지 않는다.
이씨에 따르면 관객층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분포를 이루고 있는데 앞으로 20~30대를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에 주력할 예정. 미국 영화나 한국 영화 모두 블럭버스터형 영화를 상영하면서 가능하면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를 각기 2편씩 고르게 상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씨는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극장의 개관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극장 개관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극장이 반드시 장사뿐만이 아니라 코리안 커뮤니티의 문화공간으로서도 역할 하도록 운영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지난달 25일 부인과 함께 극장을 찾아 내친김에 현재도 상영 중인 ‘카지노 로열’과 이미 막을 내린 한국 영화 ‘가을로’등 두편을 봤다는 원종만씨(타운미용성형외과 원장)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다. 원씨는 “영어권인 나로서는 때로 영화 장면 보느라 자막 읽느라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자막이 도움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라면서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미국 영화와 한국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한국 영화관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M Park 4는 한국인들에게 문화공간과 휴식처 노릇을 동시에 하면서 앞으로는 코리안 커뮤니티 활동에도 적극 참여, 한인축제 때는 LA 한국영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미디어 등과 공동으로 기획, 영화제도 마련할 계획이다.
내년 준공을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CJ 엔터테인먼트의 스크린 3개짜리 CGV 영화관이 완공되면 코리아타운에 한국 영화관이 2개가 된다. 두 극장이 양질의 영화를 상영하는 코리안 커뮤니티의 훌륭한 문화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박흥진>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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