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면허 더블 O를 소지한 영국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스크린에 등장한지 44년이 지났으나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여전히 뜨겁다. 제6대 본드 데이니얼 크레이그(38)의 캐스팅을 놓고 골수 007 팬들이 보이콧 운동까지 펼쳤던 21번째 시리즈 ‘카지노 로열’(Casino Royale)이 지금 미국과 전세계서 빅히트를 하고 있다.
지난 17일에 개봉한 ‘카지노 로열’은 27일 현재 북미서 9,410만달러 그리고 전세계 50개국에서 2억1,5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가장 돈을 많이 번 시리즈 ‘다른 날 죽다’의 총 흥행수입 4억3,200만달러를 능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차대전 때 영국 스파이였던 이안 플레밍이 쓴 소설들이 완전인 007 시리즈의 제1편은 션 코너리가 주연한 ‘닥터 노’(1962·사진). 한국에선 두번째 영화 ‘007 위기일발’이 먼저 개봉돼 이것을 시리즈 제1편으로 착각 했었다.
그 뒤로 본드 시리즈는 회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전세계적 팝문화 현상으로서 지금까지 본드 열기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혼자 힘으로 세계를 파멸하려는 악을 제거하는 본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옛 영광과 힘을 잃고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던 대영제국의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영국의 여왕처럼 구시대 화석의 찌꺼기일 뿐이다.
007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본드 개인의 활약보다 기계와 컴퓨터라는 특수효과에 너무 의존, 거의 비인간적인 공상과학 영화로 전락했었다. 이런 본드를 완전히 해체하는 대수술 끝에 나온 새 본드 시리즈가 ‘카지노 로열’이다. 이번 본드는 사납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데다가 초고성능 무기들보다는 개인의 완력으로 적을 제거하고 있다. 이것은 소설 속 본드의 본질로 돌아간 것이다.
새 본드는 다분히 인간적이요 감정적이다. 본드하면 여자를 1회용 클리넥스처럼 여기는 남자로 알지만 그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본드시리즈 첫 소설의 영화판 ‘카지노 로열’에서만 하더라도 본드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통곡을 한다. 역대 007 시리즈 중 본드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눈물을 흘린 영화가 ‘여왕 폐하의 007이다’(1969). 여기서 본드역은 제2대인 조지 레젠비(그는 이 영화 한 편에만 나왔다)가 맡았는데 그는 결혼하는 날 아내(다이애나 릭)를 불구대천의 적인 언스트 블로펠드에게 잃고 눈물을 흘렸다. 본드가 사랑 때문에 결혼하고 눈물을 흘린 영화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본드하면 늘 따라 다니는 것이 본드 걸과 마티니와 자동차 등이다. 본드는 보드카 마티니를 즐겨 마시는데 늘 스터드(stirred)하지 않고 셰이큰(shaken)해서 마신다. 그리고 본드가 타고 다니는 차는 애스턴 마틴이고 그가 소지한 권총은 25구경 베레타.
적이 없는 본드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데 본드의 역대 적 중 가장 강력한 자를 꼽으라면 ‘007 위기일발’에 나오는 국제범죄조직 스메르시의 하수인 레드 그랜트(로버트 쇼)와 ‘닥터 노’에 나온 칼날이 든 중산모를 쓰고 다니는 거구의 킬러 아드잡(소설 속 국적은 한국인이다)일 것이다. 그리고 역시 스메르시의 하수인으로 구두 속에 독침을 꽂고 다니는 로사 클렙(로테 레냐)도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본드 걸들은 대부분 본드의 하룻밤 성적 노리개들이거나 관계를 지속한다고 해도 본드의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본드의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지 많은 본드 걸들이 시리즈에 나온 뒤로 스크린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곤 했다. 이것을 ‘본드 걸 징크스’라고 일컫는데 다니엘라 비안키(007 위기일발), 메리암 다보(리빙 데이라이츠), 캐리 로웰(살인면허), 로이스 차일즈(문레이커), 오너 블랙만(골드핑거), 바바라 박(나를 사랑한 스파이) 및 드니스 리처즈(세계로도 부족해) 등이 그 여자들.
007 시리즈는 섹시한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멋있는 테마음악과 주제가로도 유명하다. 주제가로 빅 히트한 것들은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007 위기일발), ‘골드핑거’ 및 ‘선더볼’ 등이 있다.
제1대 본드 션 코너리에 이어 본드 역은 조지 레젠비, 로저 모어, 티모시 달턴 및 피어스 브로스난에 이어 데니얼 크레이그로 바톤이 이어졌다. 인기도를 매기기엔 아직 이른 크레이그를 제외하곤 역시 코너리가 가장 멋있었다. 007 시리즈 중 가장 재미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최근 연예 전문지 EW는 ‘골드핑거’를 꼽았는데 나는 대학생 때 서울 피카딜리 극장에서 본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이 제일 좋다.
한편 MGM은 ‘골드핑거’와 ‘선더볼’ 등 10편을 묶은 DVD 박스 셋 ‘제임스 본드 결정판 Vol. 1 & 2’(The James Bond Ultimate Editions Vol. 1&2)를 출시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