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2일 할리웃의 아크라이트 극장에서 열렸던 미영화학회(AFI) 주최 국제영화제의 전반적 작품의 규모와 질 그리고 관객과 기자들의 반응 등은 모두 지난해보다 못했다. 영화제가 해가 갈수록 발전한다기보다 정체상태에 빠졌거나 아니면 후진하는 느낌이었다.
LA는 1년 내내 온갖 영화제가 열리는데다가 이에서 신물이 날 정도로 영화가 흔하고 또 지역이 넓게 퍼져 있어 영화제가 크게 성공하기가 힘든 곳이다. 토론토영화제와 비교해 보면 이 곳 영화제는 말이 국제영화제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토론토영화제는 밤낮없이 거의 모든 영화가 매진되는데 올 AFI 영화제 경우 총 140여편의 출품작 중 매진된 영화는 5편이 안 된다. 평일 낮 상영되는 영화 중 어떤 것은 채 20명이 못되는 관객들이 구경하기도 했다. 주위가 너무 썰렁해 도무지 영화제라는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물론 주말에는 경우가 다르지만.
이런 중에도 봉준호 감독의 공상과학 가족 드라마 ‘괴물’(The Host)이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칸영화제 출품작 인데다가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히트작이라는 사실과 함께 영화제 며칠 전 LA타임스가 연예면에 봉 감독과의 인터뷰를 대문짝만하게 써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두 차례 상영이 모두 매진됐는데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상은 보스니아의 ‘그르바비카’(Grbavica)가 그리고 관객상은 스위스의 ‘비투스’(Vitus)가 받았다.
‘괴물’은 영화 시작 전 인사차 나온 봉 감독의 말처럼 ‘괴물영화라기보다 감정적 가족 드라마’이다. 장내에는 한국인 관객들이 많이 보였는데 봉 감독은 짤막한 인사말을 영어로 하면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영화에서 괴물(영화 ‘에일리언’의 외계 괴물을 연상케 하는데 겁 많은 나인데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은 얼마 나오질 않는다. 괴물에게 납치된 소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사분오열된 소녀의 가족이 재결합을 한다는 가족영화이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나는 큰 재미를 못 느꼈다. 별 5개 만점에 3개 정도를 줄만했다. 장황한 가족 멜로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적 특유의 멜로의 지스러기가 많아 도무지 신선감이 없었다. 사람을 통째로 잡아먹고 해골을 비롯한 뼈들을 입에서 토해내는 괴물이 가끔 나타나 이런 지루한 분위기를 깨어놓지만 상영시간 119분이 길었다. 중간 부분의 20분 정도는 잘라내도 괜찮을 듯하다. 이 영화는 매그놀리아가 미국 내 배급권을 사 내년 초에 개봉하는데 현 상태서 다소 가위질을 할 것이 예상된다.
서울 용산의 미8군 검시관(스캇 윌슨-그는 캔사스의 농부 일가족 살해사건 실화를 영화화한 1967년작 ‘냉혈’에서 로버트 블레이크의 파트너 킬러로 나온다)이 한국인 부하 직원에게 유효기간이 지난 방부제를 수채에 버리라고 지시한다. 그로부터 6년 후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나 강변 유원지에서 아버지와 함께 구멍가게를 경영하는 박강두(송강호)의 중학생인 딸 현서(고아성이 어른 뺨칠 연기를 한다)를 납치해 간다. 그런데 강두의 집안은 찢어진 집안.
이때부터 박강두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강두의 활 잘 쏘는 여동생(배두나)과 남동생 등이 현서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뛰어다니는 중에 가족이 사랑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서 상영됐을 때 반미적 영화라는 말을 들었었다. 우선 괴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핵 후유증으로 생긴 일본판 괴물 고지라가 생각난다). 그리고 베트남전 때 사용한 고엽제를 연상케 하는 에이전트 옐로 등 미국을 빗대 풍자하는 장면 등이 있지만 본격적인 반미영화는 아니다. 반미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블랙 코미디 스타일의 사회·정치 풍자영화라는 것이 옳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쓸데없이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도 하나의 평범한 오락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 적당히 즐길 만은 하지만 큰 기대를 할 만한 영화는 못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옆에서 한국인 중년 부부가 “별로 재미 없네”라고 즉석 비평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어떻게 해서 이 정도의 영화가 한국 영화사상 최고로 히트를 했을까”하는 점이다. 블럭버스터 현상이 무섭긴 무섭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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