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할 때마다 동료 미국인 비평가들로부터 거의 똑같은 말을 얻어 듣곤한다. “도대체 북한이 어떻게 돌아 가는거냐. 국민들은 굶어 죽는데 핵폭탄을 만드니 김정일이 머리가 돈 게 아니냐.” 이런 질문에 난들 뾰족한 대답이 있을 수 없어 난 그저 웃으며 “김정일이 머리가 좀 이상한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북한의 핵실험이 생각케 해주는 것은 이제 핵이 강대국만의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가 소유할 수 있는 ‘보통무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란이 핵제조를 가속화할 것이며 이어 시리아, 터키, 사우디 아라비아등도 핵보유를 서두를 게 분명하다. 우리는 보통 한번 터뜨리면 세상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핵이어서 아무나 그것을 그렇게 쉽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적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핵이 심술 부리는 아이같은 김정일의 손에 들어갔고 또 그에 의해 핵물질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매매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이제 우리는 바로 내일이라도 아마게돈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상이 핵걱정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 직후부터다. 그 뒤로 미·소간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핵은 늘 세상을 그의 검은 망토로 감싸 안아 왔다.
핵전쟁에 관한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그 중에서도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해변에서’(On the Beach 1959)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핵진이 세계를 덮어 내리며 지구의 인간들이 모두 죽어가는 가운데 자신들의 운명을 맞을 준비를 하는 호주사람들과 호주에 정박했다가 조국인 미국에서 죽음을 맞으려고 출항하는 미잠수함 선장과 수병들의 드라마다. 사려 있고 비감하며 감상적인데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헨리 폰다가 미대통령으로 나오는 ‘페일 세이프’(Fail Safe 1964)는 실수로 미폭격기에 모스크바에 대한 핵폭격 명령이 떨어진 뒤 미국과 소련정부가 위기를 해소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얘기로 긴장감 가득한 지적인 드라마다. ABC-TV가 1983년에 방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 날 이후’(The Day After)는 캔자스주 로렌스에 핵공격이 가해진 뒤의 참담한 여파를 그렸다. 진저리가 처지도록 절망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모든 핵영화중 최고의 것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반핵 다크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이다. ‘또는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이라는 긴 부제가 붙은 영화는 1960년대 미·소간 핵경쟁과 두 나라 정부의 자가당착적이요 자만에 빠진 정책과 군대적 사고방식을 뻔뻔하고 대담하고 사나우면서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우습게 야유하고 있다.
첫 장면부터 처연히 아름답고 충격적이다. 대형 B-52 미폭격기의 성교를 연상시키는 공중급유장면으로 음향효과 대신 악기 연주로 ‘조금 상냥해보세요’ (Try a Little Tenderness)가 졸듯 아늑하게 흐른다. 피해 망상증에 걸린 미공군장군 잭 D. 리퍼(스털링 헤이든)가 자기 기지를 폐쇄한 후 핵폭탄을 적재한 B-52기들에게 러시아 공격명령을 내리면서 미·소 정부 간에 아우성이 일어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이 폭탄 위에 올라탄 B-52기 기장 콩소령(슬림 피큰스)의 적진 낙하장면. 콩소령은 핵탄투하장치가 고장나자 자신이 직접 폭탄꽁무니에 올라탄채 카우보이모자를 내저으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소련땅으로 떨어진다. 콩소령의 모습에 폭탄을 사랑하는 김정일의 얼굴을 겹쳐 놓으면 좋은 풍자화(사진)가 될 것이다.
이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최근 연예주간지 EW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관해 질문을 받자 “바로 지금 슬림 피큰스가 하늘로부터 폭탄을 타고 내려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진가는 그 내용이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절실하다는데 있다.
최근 나온 DVD ‘적진 뒤 II: 악의축’(Behind Enemy Lines: Axis of Evil)은 핵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해 북한에 침투한 미해군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렸는데 국적불명의 졸작이다.
<박흥진>편집위원 hjpark@ 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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