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더니 드디어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핵위력이 약하다느니 또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말도 나왔지만 북한은 이로써 핵보유국이 됐음이 분명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세계 분쟁의 중재자 노릇을 하는 유엔 사무총장이 될것이 틀림 없으니 실로 아이러니칼하다 할 만하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 뉴스는 내가 며칠 천 코스타메사의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에서 러시아의 키로프 오페라가 공연한 바그너의 완벽한 종합예술 대하 서사극 4부작 오페라(악극)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ebelungen)를 관람하는 중에 나왔다. 바그너의 세계 운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링’사이클을 관람하는 4일간 나는 내내 핵과 황금반지 링이 서로 성능이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선 둘은 색깔이 노란색인 데다가 모양도 동그란 점부터 닮았다. 그러나 핵과 링이 진짜로 닮은 것은 그것들의 치명성에 있다고 하겠다.
4부작의 서막인 제1부 ‘라인골트’(Rheingold)에서 지하에 사는 탐욕스런 난쟁이 알베릭은 라인강 속에 있는 황금을 훔쳐다 세계 지배의 힘을 지닌 반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부인할 경우에만 세계 통치권을 가질 수 있다는 황금보호자들인 라인 처녀들의 말에 따라 사랑을 부인한다.
그런데 이 반지를 또 다른 탐욕자인 신들의 왕 보탄이 알베릭으로부터 빼앗자 알베릭은 반지 소유자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한다. ‘링’은 이 뒤로 이 반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신과 영웅과 난쟁이와 거인과 인간들이 서로 속이고 배신하고 죽이면서 일어나는 거대한 멜로 드라마이다(영화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면 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요즘의 핵 드라마는 ‘링’ 드라마를 똑 닮았다. 핵클럽 국가들은 세상의 패권을 쥐려고 핵을 제조한 뒤 그들이 가진 패권을 탐내는 북한이나 이란 같은 국가들이 핵을 가지려 하자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링을 가졌던 알베릭이나 보탄 등이 이것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이 링을 못 가진 거인 화프너와 알베릭의 아들로 용감무쌍한 지크프리트를 죽인 하겐 등이 기를 쓰고 반지를 차지하려는 모양이 요즘 우리 세상의 모양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부시가 보탄이라면 김정일은 알베릭이다.
결국 권력욕과 탐욕의 상징이 되어버린 링을 가졌던 모든 자들은 쇠망하고 죽고 마는데 이것은 핵이 인간운명의 저주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것과도 같다. 바그너가 걱정한 인간운명의 어두운 불확실성은 1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링’은 제4부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에서 지크프리트를 사랑하는 브륀힐데가 자신을 희생해 가며 반지를 라인 처녀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세상에 다시 평온이 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과연 누가 브륀힐데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링’의 세상보다 더 사악하고 불길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키로프 오페라의 이번 공연은 내게 ‘링’의 묵중한 문을 몇 인치 정도 열어준 뜻 있는 경험이었다. 엄청나게 압도적인 연극과 음악과 노래의 도도한 흐름이었는데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황금빛 추수 밭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고급 싱글 몰트 스카치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전음을 내면 가수들은 이것을 타고 넘어 노래를 불렀는데 둘이 싸우듯 했다. 심장이 파열될 듯한 높은 음으로 노래 부르는 가수들이 투사처럼 보였다.
제2부 ‘발퀴레’(Die Walkurie)에는 지크문트로 도밍고가 나왔는데 60 넘은 나이에 청아한 열창을 한 그는 이번 공연의 꽃이었다. 특히 ‘발퀴레’(사진) ‘지크프리트’(Siegfried) ‘신의 황혼’에 계속해 나온 브륀힐데 역의 올가 세르게이에바의 노래가 가슴 깊이 남는다. 막강한 음성이다.
11일 마지막 공연 후 극장을 나서면서 ‘링헤드’인 내 친구 C가 “이제 언제 다시 또 보나”하고 섭섭해한다.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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