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내 마음’(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로 유명한 토니 베넷(사진)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어 지난 달 29일 저녁 코스타메사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엘 찾아갔다. 나는 미국에 온 뒤로 내가 좋아하던 웬만한 ‘올디스 벗 구디스’ 가수들의 공연은 모두 구경했는데 베넷의 노래는 여태껏 직접 듣지 못해 벼르던 참이어서 감회가 컸다. 더구나 그가 지난 8월3일로 80세가 돼 이제 그의 노래를 안 들으면 다시는 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시거스트롬 홀을 꽉 메운 청중(나이 먹은 백인 일색)들은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상의 왼쪽 윗주머니에 빨간 커치프를 꽂은 베넷이 무대에 나서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단단한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칼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TV에서 보던 그대로다.
베넷은 나오자마자 4인조 밴드의 반주에 맞춰 자신의 스탠다드들을 불렀다. 직립한 자세로 왼손에 마이크를 쥐고 오른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까칠까칠한 비단 음색을 지닌 목소리로 그의 히트곡들을 쉬지 않고 불렀다.
베넷의 목소리는 어딘가 약간 답답한 듯 허스키한 것이 매력인데 달콤할 때는 로맨틱하다가도 강렬한 고음을 오를 때면 오페라 가수 못지 않다. 나이 80에 저렇게 아름답고 열정적인 음성을 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우리 사업에서 최고의 가수”라고 칭찬한 베넷은 시내트라가 죽은 뒤 순수한 미국의 팝 재즈 노래를 지켜주고 있는 가수이다. 나이트 클럽에서 들어야 제 맛이 날 목소리다.
베넷은 절제되고 깨끗한 제스처에 군더더기 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노래 ‘콜드 콜드 하트’를 부른 뒤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 노래는 컨트리 싱어 행크 윌리엄스의 히트곡으로 1951년 뉴요커 베넷이 감칠맛 나도록 로맨틱하고 쓸쓸하게 편곡해 노래 불러 빅히트를 했다. 베넷은 노래가 히트하자 내슈빌에서 윌리엄스가 전화를 걸어 “왜 내 노래를 망쳐 놓았지” 하며 꾸중을 했다며 웃었다. 그는 또 TV 쇼 출신인 자기와 로즈메리 클루니(배우 겸 감독 조지 클루니의 아줌마)야말로 ‘아메리칸 아이돌’의 원조라고 농담을 해 청중을 웃기기도 했다.
베넷은 거쉬인의 ‘아이 갓 리듬’, 줄 스타인의 ‘저스트 인 타임’ 그리고 ‘더 굿 타임’을 비롯해 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주연한 영화 ‘샌드파이퍼’의 주제가 ‘셰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과 ‘스마일’ 등을 열창했다. 내 양옆에 앉은 여인들이 연신 한숨 같은 탄성을 낸다. 베넷은 잠깐 쉴 겸 자기 딸 안토니아를 무대에 불러냈다. 안토니아는 무드 짙은 노래 ‘섬원 투 워치 오버 미’등 3곡을 불렀는데 꽤 잘 했다.
이어 베넷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데이 캔트 테이크 잇 어웨이 프롬 미’‘데블 문’‘잇 돈 민 어 싱 이프 잇 에인 갓 댓 싱’등을 쉬지 않고 불렀는데‘데블 문’의 노래 스타일은 정말 자유로운 열창이었다.
베넷의 노래하는 모습은 시종일관 우아하고 세련됐는데 생의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 나이 80이 돼도 저런 희열과 정열이 있을까 하고 부러웠다. 그는 마지막 곡으로 마이크 없이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불렀다. 청중들이 열광하며 앙코르를 요청하자 베넷은 ‘비코즈 오브 유’를 들려주고 퇴장했다.
베넷은 이탈리아계로 뉴욕 퀸즈의 아스토리아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그림에 심취, 10대 때 노래하는 웨이터로 일했다. 베넷의 그림 솜씨는 프로급이어서 그의 그림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할 정도다. 베넷은 1950년대 초 ‘비코즈 오브 유’와 ‘랙스 투 리치즈’‘콜드 콜드 하트’ 등 싱글 히트를 낸 뒤로 지금까지 60년간 쉬지않고(요즘은 한달에 7일 공연)공연과 음반을 내고 있다. 10번이나 그래미상을 탄 베넷이 유명 가수들과 듀엣으로 노래한 CD ‘토니 베넷 듀에츠/언 아메리칸 클래식’이 최근 나왔다.
나는 지금 ‘콜드 콜드 하트’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님이여 나는 당신이 내 모든 꿈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다오/ 그러나 당신은 내가 하는 매사가 무슨 사악한 음모라도 된다는 듯이 두려워하네요/ 당신의 고독한 과거의 추억이 우리를 이렇게 멀리 떼어놓는군요/왜 나는 당신의 의심하는 마음을 자유롭게 해 당신의 차고 찬 가슴을 녹일 수가 없는 것인가요.’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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