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균에 오염된 시금치 파동의 근원지로 밝혀진 북가주 몬트레이 카운티의 농촌 살리나스 밸리는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고향이다. 나는 지난 1987년 9월 스타인벡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40)의 무대를 취재하기 위해 살리나스를 찾아갔었다. 존 포드가 감독한 영화에는 헨리 폰다가 주인공 탐 조드로 나온다.
이 소설은 미 경제공황시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남부여대하고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로 오는 오키스(오클라호마 출신 이주 농장 노동자)들인 조드 일가의 가족 드라마이자 사회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명작이다. 조드 일가는 온갖 고난 끝에 마침내 캘리포니아 땅에 도착하는데 작품에서는 그들이 어디에 정착하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 혼자 생각으로 농부들인 조드 일가는 채소와 과수농 지대인 살리나스에서 새 삶을 꾸려나가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 본다.
20년 전 찾아간 살리나스는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사방천지가 시금치와 상추밭이어서 그야말로 시각도 푸르고 냄새도 푸르렀다. 이 조용한 마을은 농장 외에는 자랑할 것이 노벨상을 탄 스타인벡밖에 없어 그를 신주 모시듯 하고 있다. 스타인벡이 태어난 빅토리아풍 이층집은 예약손님에 한해 점심을 제공하는 식당이 돼 음식 판 돈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살리나스가 스타인벡에 의해 대중에게 널리 소개된 작품이 그의 또 다른 대하서사 소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이다. 이 글은 살리나스에서 대규모 상추농장을 경영하는 트래스크 일가의 3부자간 사랑과 증오, 질투와 갈등을 그린 격정적이요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빌려 부자간 및 형제간의 갈등을 그렸는데 소설도 흥미진진하지만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제임스 딘의 1955년작 동명 데뷔영화는 진실로 빼어난 작품이다.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영화에서 쌍둥이 형제로 나오는 칼(딘-소설에서는 칼렙)과 아론(리처드 다발로스) 그리고 둘의 신심 돈독한 홀아버지 애담(레이몬드 마세이) 등의 이름만 보아도 이 작품이 성경 내용을 차용한 우화임을 알 수 있다. 칼이 파괴적이요 반항적인 반면 아론은 온순한 아들이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칼이 결국 주변 사람들을 비극으로 끌어들이는 얘기도 성경 대로이다.
1917년 살리나스. 애담 트래스크는 아내 캐시가 쌍둥이를 낳은 지 1주일만에 가출, 두 아들을 혼자 키웠다. 아론은 착실한 아들로 아버지의 농장개발 계획을 열심히 돕는다. 그의 애인은 참한 처녀 애브라(줄리 해리스). 반면 칼은 자기 파괴적이요 내적 갈등에 고뇌하는 어두운 청년이다. 특히 칼은 아버지가 아론만 사랑한다고 오해, 더욱 침울해지고 외로워한다.
칼은 복수심에 불타 자신과 아론을 모두 파괴하려 드는데 이런 의도는 지금까지 비밀에 싸여있던 칼 형제의 어머니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급속히 현실화한다. 캐시는 남편과 두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뒤 이름을 케이트(조 밴 플리트가 오스카 조연상 수상)로 바꾸고 몬트레이의 색주가 포주가 되었다.
한편 애담이 얼음상자에 넣어 동부로 탁송한 상추가 얼음이 녹으면서 모두 썩어 가운이 기운다. 이에 칼은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어머니에게서 돈을 빌려 콩을 재배해 팔아서 번 돈을 아버지에게 주나 아버지는 이를 거절한다. 이 때 딘이 아버지의 가슴을 붙잡고 절규하는 모습(사진)이 처절하다. 그리고 칼의 분노와 좌절감이 폭발하면서 트래스크가는 쑥밭이 된다. 애담은 충격으로 뇌졸중을 일으켜 전신이 마비되고 뒤늦게 칼에 의해 자기 어머니의 신원을 알게 된 아론은 군에 입대, 프랑스에서 전사한다. 그리고 캐시도 자살한다. 결국 에덴의 동쪽에 남는 것은 속죄를 구하는 칼과 지금껏 그를 사랑해온 애브라.
‘에덴의 동쪽‘은 선과 악의 대결의 이야기로 인간은 이 충돌에서 자의적으로 선을 선택, 선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딘이 대뜸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에서 특히 감동적인 것은 레너드 로즌만의 주제곡. 초혼하는 듯한 싸늘하게 아들다운 멜로디로 옛날 한국에서는 여기에 가사를 붙여 노래 불렀었다.
‘에덴의 동산은 어두워 가는구나/봄빛을 잃고서 저물어가는구나/낙원에 맺혔던 꽃송이 피지 않고서 지다니/슬퍼 말아라 마음과 마음속에 행복의 노래 부를 날 있으리라.’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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