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04년 7월 김기덕 감독(사진)이 자신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홍보하기 위해 LA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두번째 만남이어서 반가웠는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던 중 그는 “제 영화는 한국에서 안 봐요”라고 한마디 툭 내던졌다.
나는 그 때만해도 그의 영화가 예술적인 인디(독립)영화니까 오락적인 대형 영화에 비해 관객이 많지 않다는 정도의 푸념으로 들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 난 김기덕의 “더 이상 내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 없다”는 폭탄선언을 읽고 진짜로 한국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안 보는구나 하고 절감했다.
김 감독은 지난 7일 서울에서 자신의 최신작 ‘시간’의 시사회가 끝난 뒤 “‘빈집’과 ‘활’이 개봉에 어려움을 겪은 이후 한국 영화시장에서 더 이상 내 영화를 선보이지 않기로 했다”면서 “한국에서 내 가치가 있던 없던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이 김기덕의 제삿날 같다. 앞으로 부산영화제 등 한국에서는 어떤 영화제에도 내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면서 “내 말을 협박, 불평, 하소연으로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이 보도를 읽고 김 감독이 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그의 심정을 동정하면서 아울러 그의 좌절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것이 보통 영화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도 예술의 한 부문일진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예술적 행동의 힘찬 발로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김 감독은 예술가다. 그의 영화가 어둡고 폭력성이 지나치게 가학·자학적일 때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폭력에 대해 “나는 어두운 것을 통해 밝은 곳에로의 출구를 찾고자 한다. 내 폭력은 어둡지만 유머가 있다”고 변호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수취인 불명’을 출품한 김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나는 관객과 비평가들을 생각 않고 나의 노선을 걷겠다”며 “대중성이란 참 불편한 것이다”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그는 결국 이 불편함을 견디다 못해 한국 관객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원래 그는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약간 궤변론자이긴 하지만 난 그가 저돌적일 정도로 솔직해서 좋다. 그의 영화들도 다 발가벗겨 놓은 듯이 솔직하다.
김 감독의 영화는 해외영화제와 유럽에서는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 그의 영화는 매년 베를린, 베니스 및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되며 원조교제 얘기인 ‘사마리아’로는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권태에 빠진 젊은 커플의 얘기인 ‘시간’은 올 체코의 카를로비 발리영화제 개막작이었고 오는 9월의 토론토영화제에서도 상영된다.
그럼 도대체 외국인들은 보는 그의 영화를 왜 한국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일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개봉 21일만에 1,000만명이 봤는데 2004년에 베니스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은 ‘빈집’은 왜 아무도 안 보는 것일까.
일단 그 대답은 관객들의 블록버스터 편향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뭐 하나 떴다 하면 전 동포가 그쪽으로몰려가는 성향이 있는데 사람들이 예술적 영화는 외면하면서 대박 영화에만 몰려드는 것은 보통 때는 축구경기를 안 보던 사람들이 월드컵 때는 마치 구세주의 재림이라도 맞듯 열광하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다.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장사와 오락으로만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케니 투란 LA타임스의 영화비평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특별한 경우에 식당을 찾아가는 사람보고 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맥도널드에 안 가느냐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개탄했다.
김 감독도 이런 블록버스터 현상을 우려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수 1,000만 시대가 왔으나 이런 수치는 앞으로 제작자들이 더욱 이익에만 집착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 나라 영화계가 너무 블록버스터에만 매달려 독립영화들이 살아 남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예술적 영화를 안 보는 또 다른 까닭은 사람들의 정서의 나태성에도 있다. 창조적이요 관객에게 도전하는 영화에 대응하면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고 깨닫는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고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관객의 정서가 늘 나른한 지경을 못 벗어난다면 제2, 제3의 김기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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