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봉된 9.11 테러를 다룬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영화평 11일자 ‘위크엔드’판)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감독한 올리버 스톤(59)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스톤은 정치적인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돼 스톤이 이제 나이가 먹어 물렁해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영화는 여객기가 충돌한 WTC 건물에 구조작업을 하러 들어갔다가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가 구조된 2명의 뉴욕 항만경찰의 드라마다. 철저히 두 경찰의 주관적 시각으로 그려진 영화는 생명력과 희생정신과 용기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기린 인간 드라마로 미국적인 것을 찬양하고 있다. 연출 스타일도 차분하고 미국정부를 모든 음모의 주모자로 보는 그의 영화로 보기에 힘들 정도다.
지난 달 13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가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와 스톤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점이 여러 번 논의됐다. 스톤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영화 ‘플래툰’이 베트남전에 대한 신화적 요소를 파괴했듯이 WTC는 그 날에 대한 신화적 분위기를 발가벗기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부시의 카우보이적 관점을 조소하면서 9.11 테러가 너무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톤은 연이은 인터뷰와 영화 막바지 작업으로 잠을 제대로 못자 파김치가 된 모습이었다.
그는 이어 “‘WTC’를 비롯해 모든 영화들은 결국 인간성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서로 사랑하고 상호 연계되어야 할 필요야말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입장인데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대로 이 날 본 스톤은 평소 알던 격정적인 사람이 아닌 성숙한 현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가 비록 차분해졌다고는 하지만 간간이 부시를 비난할 때는 매우 결연한 태도였다. 자신의 소신을 간명하고 압도적으로 표명하면서 현 정권의 과오를 지적했다. 본인은 “난 정치적 감독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많은 발언들은 정치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스톤이 반체제적 정치 소신을 갖게 된 것은 베트남전에 졸병으로 참전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1965년 다니던 예일대를 도중 하차하고 베트남전에 두 차례나 복무, 2개의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애국정신으로 자원 입대했던 스톤은 실제 전투를 하면서 베트남전의 무의미와 전쟁의 참상을 겪고 급진 진보파가 되었다. 베트남전의 경험을 현장의 시각으로 그린 것이 ‘플래툰’인데 스톤은 인터뷰에서 ‘WTC’도 ‘플래툰’처럼 현장시각에서 경험자의 체험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라고 강조했다.
스톤은 특히 ‘플래툰’에 관해 많이 얘기했다. 그는 반베트남전 3부작의 영화들인 ‘플래툰’과 ‘7월4일생’도 결국 이라크전을 막지 못했다면서 “본질적으로 9.11의 결과는 그 날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에게 ‘음모론자’라는 이름을 붙게 해준 케네디 암살 영화 ‘JFK’에 대해 “철저히 기록에 근거해 만들었는데도 오해받았다면서 “나는 음모론자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음모론 때문에 스톤이 9.11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보도가 나갔을 때 우파들의 우려와 반대를 샀었다. 그래서 제작사인 패라마운트는 영화개봉 전 워싱턴 D.C.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인사들을 위한 특별시사회까지 열었다. 그 후 이들은 지금 ‘WTC’를 극구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파들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스톤은 부시의 시민들에 대한 도청과 은행구좌 조사에 관해 수치스런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와 함께 미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얘기하면서 현재 건강이 악화된 쿠바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의 말을 인용했다. 스톤은 몇 년전 쿠바에서 카스트로에 관한 기록영화 ‘코만단테’(미국에서 아직 배급되지 않고 있다며 웃었다)를 찍었는데 “카스트로가 ‘역사는 반복하나 우리가 인식치 못할 뿐’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이라크전은 베트남전의 반복이라는 평소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인터뷰 후 스톤과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을 때(사진) 내가 그에게 “나 한국사람인데 부인(한국인으로 둘 사이엔 10세난 딸이 있다) 잘 있느냐”고 묻자 “그레이트”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만나서 정말 반갑다”고 했더니 “댕큐 서”라고 깍듯이 존댓말을 해 놀랐다.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반쯤 졸면서 “야 이거 미칠 노릇이네”라고 한숨 짓는 그를 보면서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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