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노래중에 ‘페이퍼백 라이터’라는 것이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 책 읽으실래요? 쓰는데 수년이 걸렸답니다. 한번 보실래요? 난 직업이 필요해요. 그래서 페이퍼백 라이터가 되렵니다. 페이퍼백 라이터/그것은 더러운 남자의 더러운 얘기지요 그리고 그의 물고 늘어지는 아내는 이해하지를 못하지요. 그의 아들은 데일리 메일에서 일하지요. 그 것은 안정된 직업이지만 그러나 그는 페이퍼백 라이터가 되길 원하지요. 페이퍼백 라이터.’
이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이퍼백은 후진 인간들이 주인공인 선정적이요 폭력적인 내용의 싸구려 소설을 말한다. 이 소설들은 대부분 폭력과 섹스가 판을 치는 하드 보일드 스타일의 미스터리 물로 전후에 크게 유행했다. 전후 눈부시게 발전하는 미국사회에 제대로 적응 못하는 많은 귀향군인들의 암울한 심정과 분위기를 반영한 내용이 많은데 이 소설들은 필름 느와르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이런 페이퍼백의 영웅으로 탄생한 것이 사립탐정이다. 전후 3인의 미국의 유명한 미스터리작가들로는 대쉬엘 해멧과 레이몬드 챈들러와 미키 스필레인등이 있다. 이들이 창조한 사립탐정들은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와 마이크 해머인데 그 중에서도 해머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영웅적이라기보다 비정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람으로 해머는 제임스 본드와 더티 해리의 형님뻘이 된다.
스필레인이 처음 해머를 등장시킨 것은 페이퍼백 ‘아이, 더 주어리’(I, the Jury·1947)에서다. 해머는 자기 전우를 죽인 요부를 집요하게 추적해 배꼽 바로 아래에 총알을 박아 살해하는데 당시 권당 25세트였던 이 소설은 미스터리 장르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무려 400만부가 팔려나갔다. 소설은 1953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터프가이 해머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가 필름 느와르 클래식으로 로버트 알드리치가 감독한 ‘죽도록 키스 해다오’(Kiss Me Deadly·1955·사진)이다. 냉소적이요 잔인하고 비정한 해머로 랄프 미커가 나와 입술을 실룩이고 코방귀를 뀌면서 적을 닥치는 대로 처단하는데 흑백판 ‘더티 해리’를 보는 것 같다.
해머가 밤에 LA를 향해 운전하는 차의 헤드라이트 앞으로 맨발에 트렌치코트만 입은 여인이 손을 흔들며 뛰어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핵폭탄 제조용 방사능물질을 둘러싼 스파이와 갱스터의 음모와 배신과 살인이 뒤범벅된 극도로 건조한 작품이다. 전후 미국사회에 만연하던 핵에 대한 공포를 반영했다.
미커의 상대역 ‘팜므 파탈’로는 백금발의 약간 맹한 얼굴을 한 개비 로저스가 나온다. 간계와 탐욕의 화신인 로저스가 코맹맹이 소리를 해가며 순진한 척 내숭을 떨면서 목적을 위해 입술과 몸까지 서슴없이 제공하는 살인녀 역을 차갑게 해낸다.
미키 스필레인이 지난 7월17일 88세로 사망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어서 해머의 활동무대는 뉴욕이었지만 ‘죽도록 키스 해다오’에서는 해머를 LA로 옮겨놓았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단편을 써 잡지에 판 스필레인은 속필이었는데 ‘아이, 더 주어리’도 9일만에 썼다고 한다. 전전에는 만화작가로 활동하다가 2차대전이 나자 공군에 입대했다.
스필레인은 단단한 통나무 같은 체구에 터프한 인상을 해 자기 글 속 주인공 해머와 혼동이 될 지경이었는데 1963년작 영화 ‘여자 사냥꾼’에서는 본인이 직접 트렌치코트에 모자를 쓰고 해머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89년까지 16년간 맥주 밀러 라이트 광고에 자기 자신을 풍자하는 해머로 나와 팝 문화의 우상이 되었었다. 그런데 스필레인은 실제로는 아주 상냥하고 부드러웠던 사람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해머는 너무 유명해 라디오 쇼와 만화와 세 차례 TV 시리즈로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중 유명한 것이 80년대와 90년대 스테이시 키치가 나왔던 작품이다. 그러나 스필레인의 페이퍼백은 너무 폭력적이요 상소리와 섹스가 판을 쳐 비평가들과 언론과 종교계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상원청문회의 조사까지 받았었다. 스필레인 자신도 자기 책을 “미 문학의 추잉검”이라고 인정은 했지만 비평가들의 혹평에 대해서는 “난 자칭 비평가라고 생각하는 등신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스필레인은 대단히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으로 심해 보물찾기 잠수와 밀주 제조자들과의 술 운반 그리고 자동차 경주와 링글링 브라더스의 서커스 단원으로 대포 속 인간탄환 노릇까지 했다. 자기 페이퍼백보다 더 페이퍼백적인 삶을 살았다. 생애 53권의 책을 써 전 세계서 2억권 이상이 팔렸다.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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