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아침 신문에서 배우 준 앨리슨(88·사진)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던 나는 마치 내가 옛날부터 잘 알던 이웃집 소녀가 죽은 것 같은 허전한 가슴을 느꼈다. 나는 “아, 준 앨리슨이 죽었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스크린에서 본 봄볕처럼 아늑한 얼굴을 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앨리슨은 전형적인 미녀는 아니었다. 넓둥근 얼굴에 단발을 했던 그녀는 그러나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여자였다. 그녀의 친구였던 배우 진저 로저스의 말처럼 “그녀는 모든 남자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이자 모든 여자가 친구로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였다.
내가 어렸을 때 앨리슨을 보고 그녀의 기분 좋은 얼굴에 반했던 영화가 ‘삼총사’(1948)와 ‘글렌 밀러 이야기’(1953)였다. ‘삼총사’는 동양극장에서 그리고 ‘글렌 밀러 이야기’는 문화극장에서 봤는데 나는 그녀의 포근한 얼굴에 마음을 맡기듯이 이끌렸던 기억이 난다. 꼬마였던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아마도 여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키 5피트1인치에 체중이 100파운드밖에 안 되는 앨리슨은 밝고 명랑한 얼굴과 성격 그리고 탄산수의 거품과 같은 미소(그러나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 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었다. 그녀의 전성기는 1940년대와 1950년대로 특히 앨리슨은 1949년부터 1955년까지 키다리 지미 스튜어트와 3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외다리 야구선수 이야기 ‘스트래턴 이야기’와 빅 밴드 글렌 밀러 악단의 트럼보니스트 단장 밀러의 전기 ‘글렌 밀러 이야기’ 및 공군조종사 이야기인 ‘전략 공군사령부’등. 앨리슨은 다른 많은 영화에서처럼 이 3편에서도 남편을 사랑하고 돌보는 아내로 나왔다. 특히 ‘인 더 무드’로 유명한 글렌 밀러의 영화는 그의 히트곡들이 줄줄이 나오는 매우 즐거운 영화다. 내가 글렌 밀러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원인도 이 영화 때문이었다.
칼싸움하는 영화 ‘삼총사’에서 앨리슨은 다르타냥(진 켈리)의 애인으로 나왔다. 다르타냥이 2층에서 앨리슨을 훔쳐보고 첫 눈에 반해 나오려는 환호성을 헝겊으로 입을 틀어막고 참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앨리슨(본명 엘리노어 가이스만)은 7학년 때 브로드웨이 코러스 걸로 취직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MGM에 고용돼 할리웃에 진출한 뒤에도 처음에는 주로 뮤지컬에 나왔다. 그러나 루이 B. 메이어 MGM 사장도 앨리슨이 전형적 미인이라고 생각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한 때 고생을 했는데 사이가 좋았던 밴 존슨과 공연한 뮤지컬 ‘두 자매와 수병’(1944)이 히트를 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앨리슨의 첫 남편은 유명한 배우로 후에 제작자가 된 딕 파웰. 파웰도 앨리슨처럼 뮤지컬 배우였으나 1940년대 중반 들어 드라마 배우로 변신, ‘머더 마이 스위트’ 등 여러 편의 명작 필름 느와르에 나왔다. 둘은 할리웃의 잉꼬부부였는데 앨리슨이 제트기 실험비행 조종사의 실화 ‘맥코넬 이야기’(1955)에서 공연한 유부남 앨란 래드를 사랑하게 돼 한때 별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파웰은 결혼생활 18년째인 1963년 암으로 사망했는데 그가 암에 걸린 것은 영화 촬영 때문이었다. 파웰은 제작자로 존 웨인이 징키스칸으로 나온 ‘정복자’(1956)를 유타에서 찍었는데 촬영 장소가 핵실험장 근처였다. 파웰뿐 아니라 웨인과 그의 애인으로 나온 수전 헤이워드도 모두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앨리슨은 파웰이 죽은 뒤 두문불출하고 술에 의존했는데 캘리포니아 오하이의 자택서 앨리슨을 임종한 치과의사 출신의 배우 남편 데이빗 애쉬로의 사랑과 배려로 재기할 수 있었다.
무난하고 평범한 것이 가장 좋다는 말도 있듯이 준 앨리슨(애칭 주니)은 특별난 것이 없어 정이 가는 여자다. 그녀는 모든 남자들의 소녀요 누나요 애인이자 또 아내요 어머니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늘 미소를 짓던 앨리슨이 남편 글렌 밀러가 군 위문공연차 타고 가던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은 뒤 벽난로 위에 놓인 남편의 사진을 그리운 시선으로 쓸쓸하게 바라보던 라스트 신(‘글렌 밀러 이야기’)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페어웰 주니.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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