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지난달 22일에 개막돼 7월2일까지 웨스트우드의 여러 극장에서 진행된 제12회 LA영화제(LAFF)에 참가해 느낀 점은 토론토국제영화제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질과 양이 닮았다기보다는 영화들이 상영되는 웨스트우드에 산재한 극장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보행 영화제’였다.
토론토영화제는 다운타운에 있는 매뉴라이프 빌딩 내 극장을 중심으로 보행 가능한 주변 극장들에서 진행된다. 이번 LA영화제서 한 극장에서 다른 극장으로 걸어다니며 9월에 열리는 토론토영화제를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북미 최대의 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와 아직 지역 영화제 수준을 못 벗어난 LA영화제를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 상영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토론토에 비해 LA는 시간성이 다소 느슨했고 또 토론토영화제는 거의 모든 영화가 매진되는 것에 비해 LA영화제는 자리가 많이 비는 영화들이 많았다.
LA영화제 주최측이 지난해까지 영화제를 진행해온 웨스트 할리웃에서 웨스트우드로 장소를 옮긴 것은 영화제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자는 의도에서였다. 이번 영화제는 웨스트우드의 호텔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일단 장소 이전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총 4,300편이 제출돼 그 중 265편의 장·단편과 뮤직비디오 등이 상영된 이번 영화제에는 ‘심야 섹션’과 ‘LA국제 섹션’등 2개 부문이 신설됐다. ‘심야 섹션’은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상스럽고 야한 영화들을 그리고 ‘LA국제 섹션’은 LA에서 활동하는 이민자 영화인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내가 이번에 큰 기대를 걸었던 영화가 한국계 크리스 챈 리 감독의 코리안 갱스터 영화 ‘풀어’(Undoing)였다. 표가 매진되는 성황을 이룬 세계 최초 상영작이었다.
크리스는 1998년 존 조 등 한국 및 아시아계 젊은 배우들을 등장시킨 코미디 드라마 ‘옐로’(Yellow)로 주목을 받았던 젊은 영화인이다. 이 영화는 졸업 전날 8명의 고교생들의 하룻밤 오디세이를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 가정의 세대간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그린 작품.
그러나 한국계 성 강(‘분노의 질주’ 3편)이 주연하고 중국계와 미국인 배우까지 기용해 만든 ‘풀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였다. 1년전 LA 코리아타운을 떠났던 한국인 갱스터 새뮤얼이 1년후 돌아와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는 과정에서 폭력과 거짓의 늪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느와르 스타일의 영화다.
이 영화는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카메라 테크닉을 뽐내는 외화내빈의 작품이다. 크리스는 단순한 폭력영화가 아니라 새뮤얼의 내면 성찰도 시도했지만 새뮤얼 역의 성 강의 연기가 빈사상태의 모습이어서 액션이나 심각한 성격영화로서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크리스의 카메라 동작과 컬러와 촬영 등이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지나치게 재주를 부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극장에서 만난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의 마케팅·홍보담당 수석부사장 로라 김도 “안 됐다”고 짤막한 한 마디를 했다.
영화제서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국계 중국인으로 제6세대 감독인 장루의 ‘망종’(Grain in Ear·사진)이었다. 중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불법 노상 김치장수인 젊은 한국계 중국여인 수이의 고독과 궁핍과 주위의 냉대를 통해 중국 내 소수민족인 한 여인의 아픔과 슬픔을 그렸다. 결코 비판이나 설교조가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는 식으로 그렸는데 이런 입장을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의 롱샷이 절실하고 아름답게 영상화하고 있다.
대사도 별로 없고 연기도 무표정하며 음악도 없는 복날 오수처럼 나른하게 가라앉은 영화인데 수이 역의 리우 리안지의 무표정하고 제스처를 삼가한 연기가 여인의 고독과 삶의 피곤을 통렬하게 묘사한다. 툭툭 내던지는 듯한 유머를 지닌 엄격하고 절제된 영화다.
한국계 김소영이 감독한 ‘빈둥거리는 날들’(In Between Days)은 새로 이민 온 10대 소녀에 관한 진실되고 사실적인 성격탐구 영화이자 성장기. 영화학도 고다르의 영화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장래가 촉망되는 솜씨다.
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 영화상은 스티브 칼린스 감독의 17세난 소녀의 성장기인 ‘그레첸’(Gretchen)이 그리고 기록 영화상은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에 대한 로저 마호니 대주교 등 교계의 반응을 담은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에이미 버그 감독)가 각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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