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을 여자보다 더 잘 아는 프랑스의 팔순 노장 에릭 로머의 영화 중 ‘클레어의 무릎’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매력적인 영화는 약혼자가 있는 중년 남자 제롬이 소녀 티를 채 못 벗은 클레어의 무릎에 반해 정신을 못 차리는 얘기다.
영화 중 굽 낮은 하얀 구두를 신고 허벅지의 절반까지만 내려 온 하늘색 스커트를 입은 클레어가 날씬한 다리를 노출하고 과수용 사닥다리에 올라가 있는 것을 제롬이 올려다보는 장면이 있다. 클레어의 굴곡진 긴 다리가 곱기도 한데 난 이 장면을 찍은 엽서를 내 사무실 창가에 놓고 틈 나면 클레어의 다리를 훔쳐보곤 한다.
여자의 쪽 뻗은 긴 다리처럼 아름답고 섹시한 것도 없을 것이다. 김세환이 “긴 머리 짧은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이라고 노래한 것도 그녀의 짧은치마 밑으로 드러난 다리가 고와서였을 게다. 8등신 미녀의 조건 중 하나가 다리가 길어야 하는 것인데 긴 다리 미녀들의 각선미를 마음껏 장사수단으로 써먹은 곳이 왕년의 할리웃이었다.
할리웃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매력적인 여배우들에게 칼러가 올라간 모직 수영복을 입힌 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뛰어 노는 장면을 찍어 영화선전에 썼다. 이 여자들이 소위 ‘수영복 미녀들’로 이들 중에는 후에 클라크 게이블의 아내가 된 캐롤 롬바드도 있다.
이들이 핀업 또는 치즈케익의 원조. 섹시한 미녀 스타들의 육체가 가급적 많이 노출된 전신사진을 핀업이라 불렀는데 남자들이 이 사진을 핀으로 벽에 꽂고 감상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러나 핀업이 왜 디저트인 치즈케익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둘다 감관에 즐거움을 주어서 그런 것일까.
할리웃의 핀업은 1930~1960년대까지 유행했는데 할리웃 배우 치고 핀업의 대상이 되지 않은 배우가 없다고 해도 되겠다. 초기 핀업의 수퍼스타로 핀업을 예술형태로 바꿔놓은 여자가 육감적인 몸매에 빨강머리를 했던 ‘잇 걸’ 클라라 보우였다.
보우처럼 섹시스타가 아닌 연기파 배우들인 캐서린 헵번, 바바라 스탠윅,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및 베티 데이비스 등도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할리웃의 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스튜디오들은 이 사진들을 대량 생산, 신문과 잡지 등에 팔아먹었다. 베티 데이비스는 할리웃의 이런 풍토에 대해 “백금발과 다리가 재능보다 더 중요한 곳인 할리웃에 온 내가 정말 바보로구나”하고 개탄하기도 했다.
핀업의 포즈는 발은 한데 모으고 엉덩이는 카메라를 향해 비스듬히 돌리고 어깨는 카메라 쪽으로 돌리고 가슴은 내밀고 배는 들이밀며 입술을 촉촉하게 한 뒤 살짝 웃으면서 얼굴을 카메라 쪽으로 돌린다.
핀업은 특히 2차대전 때 전선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사들 사이에 대유행했었다. 이들은 가린 곳이 별로 없는 옷차림을 한 미녀들의 사진을 자기들 침대 옆에 꽂아놓고 향수를 달랬었다. 이런 모습은 전쟁영화에 자주 나오는데 잠수함 영화를 보면 수병들이 작전신호에 따라 자기 위치로 달려가면서 핀업에 손키스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2차대전 때 가장 유명했던 3인의 핀업이 베티 그레이블(사진)과 리타 헤이워드 그리고 제인 러셀이다. 그 중에서도 코미디와 뮤지컬 스타였던 그레이블은 섹시하면서도 옆집 처녀처럼 순진하고 귀엽게 생겨 특히 GI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레이블이 사랑스러운 반면 네글리제를 입고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은 헤이워드와 젖무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블라우스를 입고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있는 러셀의 모습은 폭발적으로 선정적이다. 핀업은 60년대 들어 스튜디오 체제가 붕괴하고 여권운동이 일면서 시들해져 갔다.
폭스 비디오는 최근 핀업 베티 그레이블의 영화 4편을 묶어 ‘베티 그레이블 컬렉션’(The Betty Grable Collection)으로 출시했다.
▲‘달리 자매들’(The Dolly Sisters·1945)-노래와 춤이 있는 유랑극단 자매 이야기. ▲‘저 아래 아르헨티나로’(Down Argentine Way·1940)-아르헨티나의 미남 말 사육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뮤지컬. ▲‘마이애미의 달’(Moon Over Miami·1941)-웨이트리스 자매가 부자 남자를 낚으려고 마이애미로 간다. ▲‘나의 푸른 하늘’(My Blue Heaven·1950)-아기를 입양하려고 애쓰는 라디오 스타 부부의 뮤지컬.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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