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예수의 배신자로 알려진 유다(그림 오른쪽)가 실제로는 예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예수를 진실로 이해하는 유일한 제자라는 내용이 적힌 1700년된 유다복음이 공개됐을 때 난 그게 뭐 그리 새로운 사실이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얘긴 내 친구 황석영이가 벌써 중학교 때 썼어’라고 혼자 속으로 중얼댔었다.
언론에 밝혀진 유다복음의 내용을 보면 예수는 다른 제자들보다 유다를 가장 뛰어난 제자로 여겼으며 유다가 예수를 로마 병정들에게 넘긴 것도 예수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로 돼 있었고 또 그러려면 누군가 예수를 배신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다복음의 얘기는 그럴 듯하다.
또 유다복음은 예수가 유다에게 “다른 자들로부터 거리를 두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왕국의 신비를 말해 주리라”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유다가 다른 제자들로부터 멸시받을 것을 지적하면서 “너는 다른 세대들에 의해 저주받을 것이나 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내가 유다복음 얘기를 읽고 석영이(중학생 때는 수영이)를 생각했던 까닭은 그가 중학교 문예콩쿠르에서 장원을 한 글이 유다의 입장을 옹호한 ‘부활이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글에서 유다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왜 유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름대로 풀이했다.
나는 당시 이 단편을 읽으면서 석영이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문재에 큰 감명을 받았었다. 주인공의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그의 정신이 가상했다. 몇년전 LA를 방문한 석영이를 만났는데 그는 그때 내가 ‘부활이전’을 얘기하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어머니와 두 누나의 성화에 반발, 유다를 변호했다며” 깔깔대고 웃었었다.
이번에 유다복음이 공개됐을 때 난 석영이가 ‘부활이전’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해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다음은 석영이의 답장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나는 지금 파리로 거처를 옮겼어. 여기 오니까 물가는 싸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빵도 맛있고 런던보다 훨씬 지내기가 좋아. 여기서 프랑스와 독일 출판사 등과 계약한 작품을 써낼 작정이다.
나의 어머니도 너의 어머니처럼 평양 분이고 골수 기독교인이었거든. 청소년기의 동서양 고전에 관한 독서에 의해서 기독교 교리라든가 근본주의 따위를 무시하게 됐어.
유다와 베드로는 둘 다 열심당이었거든. 요새 말로 치면 반 로마제국 독립운동가들 이었다고나 할까. 베드로가 예수를 체포하려는 로마 군인과 칼싸움을 벌이려 했을 때 예수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한 것은 그들의 폭력적 저항에 반대한다는 의사표시였을 거야. 하여튼 여러 기록에 보면 유다와 베드로는 예수의 가르침이 추상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은근히 불만을 표시한 것들이 여러군데 나타난다.
이를테면 유다는 예수 처형 뒤에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대대적인 반 식민지적 저항이 일어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는 배신자로 찍혀서 피 값인 은 삼십 달란트라는 돈과 그것으로 행려자의 묘지를 산 ‘피밭’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되었지.
내 어릴 때 성서를 들춰보다가 유다의 배신과 마지막 밤이 인상적이어서 그걸 단편소설로 썼지. 제목은 ‘부활이전’이었지. 유다는 괴로워하면서도 예수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밀고한다. 그와 베드로는 바로 오늘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으며 유대교의 천년 왕국이나 예수의 천국을 현실적으로 이루어내기를 바랐다.
이건 내 소년적 상상력이었어. 너도 알잖아. 우리 중고등학교 때의 감옥 같은 일제교육 잔재, 전후 한국의 전사회적인 가난과 억압감 따위를. 내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은 결국 ‘자유’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는지.
그래 오랜만에 네 덕분에 옛날을 생각하게 되어서 즐거웠다! 잘 지내. 황석영’
이제 석영이가 파리지앙이 되었다고 하니 문필가로서는 한 번 살아 볼만한 데서 사는구나 하고 나도 기뻤다. 석영이가 로맨틱한 도시에 살면서 연애소설이나 하나 썼으면 좋겠다.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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