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아 당신들은 내가 악의적이요 고집불통이며 인간 기피증이 있다고 하지만 거기엔 당신들이 모르는 까닭이 있지. 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내 형편(귀먹음)이 드러날까 봐 공포에 사로잡히곤 해. 이런 상황이 조금만 더 심하면 내 목숨을 끊을지도 몰라. 그런 나를 말리는 건 오로지 예술이야.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을 모두 끄집어내기 전에는 난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베토벤이 청각장애가 악화하던 32세 때인 1802년 10월6일 그가 휴양중이던 비엔나 북서쪽 광천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명한 유서의 일부다.
비 내리는 지난 5월말 그가 이 유서를 쓴 하일리겐슈타트 그린징어 슈트라세 64번지(사진)를 찾아갔다. 프라이빗이라는 안내문이 달린 흰색 2층집 문을 밀어보았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비를 맞으며 보리수 길을 따라 클린턴도 와서 돼지고기와 백포도주를 마셨다는 바하헹글 식당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잠시 베토벤의 고뇌와 고독을 생각했다.
내가 이번에 동구라파 여행을 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베토벤의 무덤과 모차르트의 생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유서의 집은 저녁먹는 식당 근처에 있어서 보너스로 본 것이다.
오손 웰즈가 나온 ‘제3의 사나이’에서 본 전차가 아직도 굴러다니는 비엔나의 중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무덤 앞에 서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여기를 먼저 방문했던 내 친구 C처럼 장미 한 송이를 못 들고 온 것이 안타까웠다. 베토벤 무덤 왼쪽에는 ‘경기병’ 서곡을 쓴 주페의 무덤, 오른쪽에는 슈베르트의 무덤 그리고 앞에는 이들의 맏형 모차르트의 가짜 무덤이 음악가의 묘지를 형성하고 있다.
첫 방문지인 인스브루크를 거쳐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어놓은 4층에서 아기 모차르트가 출생했는데 간 김에 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만든 바이얼린 모양의 상자로 된 초컬릿을 샀다. 동화 속 그림처럼 아름다운 인구 30만의 잘츠부르크를 250년 전에 태어난 모차르트가 아직도 먹여 살리고 있었다. 모차르트 생일이 1월이어서 인지 잘츠부르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잘츠부르크 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본향. 관광 필수코스로 영화를 찍은 미라벨 공원에 들어서니 견습수녀 마리아와 그가 돌보는 7남매가 즐겁게 뛰놀며 부르던 ‘도레미’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던 황제의 도시요 유럽의 서울이었던 비엔나로 찾아왔듯이 우리도 이어 비엔나로 갔다. 가는 길에 버스 창밖으로 녹색 융단이 산을 덮은 듯한 비너발트를 바라보니 슈트라우스의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가 콧노래로 흥얼거려진다. 엄청나게 큰 쇤브룬궁은 나폴레옹이 두 번이나 점령한 궁. 나폴레옹 전투만큼이나 고된 관광길이라는 생각이 났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뒤로하고 빈자의 파리 같은 부다페스트를 거쳐 프라하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받으면서 히치콕의 영화 ‘찢어진 커튼’에서 경찰을 피해 동독서 서구로 탈출하던 폴 뉴만의 초조감을 느껴봤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이유가 전 공산국가의 땅을 밟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계속해 내리는 빗속에 스메타나가 찬양한 몰다우강이 시내를 가르고 흐르는 프라하는 수채로 그린 파리 같았다. 이번에 본 도시 중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프라하의 겨울’을 겪은 셈이었다. 도떼기시장처럼 관광객으로 붐비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경하면서 도시의 고전미에 사로 잡혔는데 미국에 있던 드보르작이 “고잉 홈, 고잉 홈”하는 ‘신세계 교향곡’을 지으며 향수를 달랜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신시가지의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을 꺾기 위해 소련군의 탱크가 밀고 들어온 장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살한 두 청년의 묘지 앞에 서니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쥘리엣 비노쉬가 나온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생각났다.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황금소로 22번지의 푸른 페인트를 칠한 성냥갑 만한 집이 카프카가 1년간 머물면서 ‘성’과 ‘변신’을 썼던 곳. 카프카를 공부하던 대학시절이 그리워졌다. 황금소로의 돌길 위를 걷는 관광객들의 구두발자국 소리가 이 고도의 역사의 또렷한 음계소리처럼 들린다. 시내로 돌아와 카프카 T셔츠를 샀다. 이튿날 우리는 베를린으로 향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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