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의 한국일보에서 LA의 한국일보 근무를 자원한 큰 두 이유는 영화와 자유 때문이었다.
자유부터 말하자면 당시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어서 신문사 편집국에 중앙정보부 요원이 들락날락 거릴 때였다. 전날 쓴 기사가 이튿날 아침에 지면에서 사라지기가 예사였다. 우리는 이런 울분을 퇴근 후 회사 근처 청진동 빈대떡집에서 막걸리로 삭였는데 술기운이 거나해져 정권 욕을 하다가도 주위를 돌아보곤 했었다. 어디에 정보부 끄나풀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영화기사를 쓰고 있지만 나는 밥은 몇끼 굶어도 되지만 영화는 안보면 속병이 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부산 피난시절 꼬마가 혼자서 변사 옆에 앉아 무성영화를 보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영화에 대한 정열은 그 뒤 반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조금도 식지를 않고 있다. 중독이요 집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3년 파견기간이나마 자유를 호흡하며 영화의 본 고장인 할리웃에서 영화를 실컷 보고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쌌었다. 어찌보면 내가 귀국을 포기한 것도 영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일보에 영화평을 쓰게 된 것은 미국 온지 얼마 안돼 당시 부국장이었던 박록 주필의 건의에 따라서였다. 그 때만 해도 신문사의 규모가 작아 주 1회 손바닥만한 글이 나갔는데 처음 쓴 영화가 1981년 6월13일자에 게재된 ‘론 레인저의 전설’이었다.
그 뒤 영화를 부지런히 보면서 시사회에서 알게 된 미국인 비평가들과 홍보회사 직원들의 적극적인 권유가 계기가 돼 지난 1998년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이 됐다.
LAFCA 회원이 된지 8년만에 최근 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이 되었다. 난 생각지도 않았는데 평소 안면이 있는 필 버그 HFPA 회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너 내가 밀어 줄 테니 우리 회원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와이 낫”이 내 대답. 필과 함께 10년 전 HFPA 회원이 된 최명찬씨가 후원자가 돼 회원들의 투표 끝에 좋은 결과로 나의 가입이 수락됐다. 최씨와 나는 최씨가 과거 취재부장으로 있던 서울의 TV 저널에 내가 글을 기고하면서 알게 됐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것도 내 가입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매년 1월 NBC-TV로 전세계에 중계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주관처인 HFPA는 1943년에 창립됐다. 할리웃을 거점으로 해외 신문이나 잡지에 영화계 뉴스를 송고하는 기자들로 시작됐는데 당시만 해도 백인일색이었다. 현 회원은 전세계 55개국을 대표하는 90여명의 저널리스트와 사진기자들로 구성됐다. 이들 중 아시안은 나와 최씨를 비롯해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및 인도에 글을 보내는 9명.
회원들이 투표로 수상작과 수상자를 뽑는 골든 글로브의 주가가 높아지게 된 까닭은 이 시상식이 오스카 시상식보다 1개월반 전에 열리면서 오스카상 판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골든 글로브의 주요 부문 수상작과 오스카의 주요 부문 수상작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면서 상 좋아하는 영화사들은 HFPA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오스카와 그래미에 이어 시청률 3위를 기록하는 연예 쇼다. 이렇게 시청률이 높은 까닭은 영화 최우수 작품 및 남녀주연상을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주는 데다가 TV 작품에도 상을 주기 때문(올해 한국계 샌드라 오가 ‘그레이의 해부’로 TV 부문 조연상을 탔다). 이 때문에 할리웃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대거 참석, 시청률 제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HFPA 회원들은 연중 300여회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그 2~3일 후 해당 영화의 주연 배우와 감독들을 기자회견식으로 인터뷰를 한다. 이 자리에는 콧대 높은 탐 크루즈도 나오고 기자 기피증이 있는 우디 알렌도 나온다. 나는 지난 19일 영화 ‘파경’(The Break-Up·6월2일 개봉)에 나온 제니퍼 애니스턴 인터뷰에 입회 후 처음 참석했다. 내 질문 순서가 돼 나는 자신을 코리아 타임스 기자라고 소개한 뒤 “새 회원”이라고 말했더니 제니퍼는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은 심각한 드라마 배우로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제니퍼는 이에 대해 “나는 어느 한 장르에 매달리지 않고 좋은 작품이면 드라마건 코미디건 상관없이 출연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HFPA의 오랜 전통이 인터뷰 후 회원들이 한 명씩 차례로 스타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 좀 쑥스러웠지만 나도 제니퍼에게 다가가 “만나 반갑다”고 악수한 뒤 그대로 손잡고 사진을 찍었다.(사진)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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