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토벤(사진)에 관해 처음 배운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기억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관한 글이 있었다. 산발한 베토벤이 뒷짐을 지고 만월하의 밤길을 걷는 삽화가 있는 이 글은 베토벤이 외출했다가 달빛이 환한 길을 걸어 귀가하면서 이 음악의 악상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나는 그 때 ‘월광 소나타’는 듣지도 못했고 교과서의 얘기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뒤에서야 알았다.
그 후 베토벤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이 때는 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곡을 노래까지 했었다. 음악선생님이 가르쳐준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환희에의 송가.’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 뻗어나는 나무들은 쉬지 않고 자란다. 봄 비 내려 새싹 트는 나무 순을 보려마 햇볕 받아 웃음 짓는 꽃봉오리 보려마.”
이 가사는 원작자인 쉴러의 시와는 상관없는 한국판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 12일 디즈니 홀에서 살로넨의 지휘로 LA필과 매스터 코랄이 이 부분을 연주하고 합창할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 가사를 따라 불렀다. 대부분 음악의 피날레는 격정적이게 마련이지만 베토벤의 제9번과 제5번(운명)의 피날레처럼 사람의 피를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뱅뱅 돌면서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듯한 오르가즘을 느끼게 된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베토벤의 자서전을 쓴 에드먼드 모리스는 “‘운명’ 교향곡의 피날레에서 오케스트라가 완전히 해방될 때는 목뒤에 있는 모든 잔털들이 일어선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 12일 제8번 교향곡에 이어 이 ‘합창’의 피날레를 들으면서 고독과 귀머거리라는 천형을 받은 자가 어떻게 저렇게 음악으로 형벌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다시 한번 경탄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음악의 시공에 만유하면서 소리로 인간 감정의 전음계를 포용하기 때문에 도둑에서부터 철학자까지 모두 좋아한다. 특히 니이체가 창조한 ‘초인’과도 같은 베토벤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으로 그의 음악은 한 마디로 인간성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영화에도 잘 쓰이는데 ‘합창’의 2악장은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됐고 동서독 통일축제 음악에서 연주된 곡도 인류 형제애와 우주를 찬양한 이 교향곡이었다. 또 ‘합창’의 피날레는 찬송가 287장의 곡으로 사용돼 결혼식 때 불려지기도 한다.
과다 노출됐는데도 들을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힘을 가진 ‘운명’교향곡의 ‘다 다 다 덤’ 하는 첫 시작 모티브에 대해 베토벤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설명했다지만 그건 확인된 바 없다. 그보다 모스부호로 V를 뜻하는 이 모티브는 2차대전 때 승리의 상징으로 쓰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은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에서 잘 묘사됐다.
이 4개의 음과 그 뒤의 선율은 너무 유명해 디스코와 팝으로도 편곡됐다. 아이스 스케이팅의 올림픽 유망주인 시골 처녀가 연습중 사고로 눈이 머나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 영광을 차지한다는 청춘멜로물 ‘아이스 캐슬’에서는 주인공이 디스코로 편곡된 이 음악에 맞춰 스케이팅을 하는 멋진 장면이 있다.
나는 지난 6일 이 곡과 함께 주신 바커스가 만취해 광란하는 듯한 피날레로 끝나는 베토벤의 제7번 교향곡을 역시 LA필의 연주로 들었다. 이틀간 베토벤의 4개의 교향곡을 나와 함께 들은 친구 C는 “LA필과 디즈니 홀의 소리가 갈수록 훌륭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힘찬 살로넨의 지휘하에 LA필은 응축되고 결집된 아름다운 소리를 자아냈다. 이번 연주는 LA필이 이번 시즌에 레퍼터리로 작성한 ‘베토벤 언바운드’의 후반 콘서트였다. 제1번부터 제4번까지 그리고 제6번 교향곡은 지난해에 연주됐고 이번에 나머지 교향곡들이 연주됐다.
얼마전 신문에 시카고의 라이프젬사가 베토벤의 머리칼 6~10가닥으로 0.5~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3개를 만든다는 뉴스가 실렸었다. 10년전에는 과학자들이 베토벤의 머리칼을 분석해 창조와 고통의 관계를 규명한다고 법석을 떨더니 베토벤은 사후 180년이 되어서도 보통 인간들에게 시달림을 받는다는 느낌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