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카바레 하면 퇴폐와 불륜의 온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한국전 후 장안에 춤바람이 불면서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카바레에 들락날락하다가 바람들이 났던 과거사 때문이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의 대학교수 부인도 젊은 춤꾼에게 ‘슬로 슬로 퀵 퀵’을 배우다가 바람이 났었다. LA 코리아타운에도 카바레가 몇군데 있는데 술 한잔 마시고 춤추면서 피로도 회복하고 기분도 전환시키는 것을 사갈시할 필요는 없겠다.
카바레와 카바레 노래 하면 어둡고 칙칙하고 선정적인 느낌이 떠오른다. 헤플 정도로 섹시한 것이 카바레 노래인데 나는 10여년 전 할리웃의 로즈벨트호텔 내 클럽 시네그릴에서 처음으로 카바레 음악을 경험했다. 한국서도 크게 유행한 ‘우스카 다라’를 부른 나이트클럽의 검은 여황제 어사 키트의 쇼였는데 한마디로 화끈했다.
현존하는 카바레 가수 중 아마도 최고는 뉴욕서 살고 있는 독일 태생의 우테 렘퍼(Ute Lemper·사진)일 것이다. 게르만족의 특징을 그대로 지닌 모습을 한 렘퍼는 노래, 춤, 연극, 콘서트 및 영화 등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다. 엄청난 볼륨의 목소리와 끈끈이와 지렁이처럼 맨살과 함께 연골까지 흐느적거리며 칙칙 감겨드는 무대매너로 보는 사람의 입천장을 타 들어가게 만든다.
카바레 노래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베를린서 크게 유행했는데 라이자 미넬라가 나온 영화 ‘카바레’는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렘퍼는 ‘카바레’는 물론이요 또 다른 카바레 가수가 주인공인 ‘푸른 천사’도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했다. 카바레 ‘푸른 천사’의 가수는 롤라-롤라(마를렌 디트릭-배우이자 카바레 가수)인데 제자 단속차 여기 들렀던 교수가 금발에 탑 해트를 쓴 롤라-롤라가 검은 스타킹 속의 넓적다리를 흔들면서 노래 부르는 자극적 자태에 반했다가 패가망신한다.
며칠 전 꼭 한번 육안으로 목격하면서 노래를 들어야겠다고 별렀던 렘퍼의 UCLA 공연엘 갔다. 나는 검은 옷을 입고 갔는데 역시 많은 청중들이 검은 옷차림이었다. 로이스 홀은 만당을 이뤘는데 독일 사람들이 많았다.
약간 붉은 색이 나는 금발에 길고 하얀 팔이 어깨까지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키가 큰 렘퍼는 무대에 나서자마자 4인조 밴드의 반주에 맞춰 ‘암시장’을 노래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렘퍼가 썼는데 그녀는 노래 뒷부분을 LA의 암시장으로 바꿔 불렀다. 그리고 가슴 안주머니에서 더러운 것들을 꺼내 내던지는 제스처를 취하며 “명예와 종교와 오스카와 체니의 엽총과 대량살상무기를 판다”며 외쳐됐다. 불타는 듯한 음성으로 노래하면서 온 몸을 비틀고 꼬아대는데 몸 전체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카바레 가수의 퇴폐적 미가 넘쳐흘렀다. 유혹적이고 자극적이며 보는 사람의 넋을 앗아가는 노래요 제스처였다.
렘퍼는 이 날 자신의 18번 같은 쿠르트 바일의 노래를 몇 곡 불렀다. 유태계 독일인으로 나치스를 피해 미국에 정착했던 바일은 자기 곡에 재즈와 카바레 음악과 팝을 접목시킨 고전음악 작곡가. 나는 그의 뮤지컬 ‘니커바커 할러데이’에 나오는 ‘세프템버 송’을 몹시 좋아한다.
렘퍼는 공연 후반부 바일의 유명한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칼잡이 맥’(Mack the Knife)을 휘파람을 불면서 술 주정하듯이 노래해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노래는 바비 다린이 불러 빅히트를 했었다.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위트를 지닌 렘퍼는 이 날 몇 차례 자기 노래를 부시 비판 가사로 바꿔가며 노래했다. 대단히 정치적인 여자라는 것을 느꼈는데 그녀가 계속 부시를 비꼬자 객석에서 “여긴 극장이지 정치마당이 아니야”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청중들은 노래가 끝나자 기립박수로 렘퍼를 응원했다. 나도 그랬는데 다분히 극적인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렘퍼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과 이디시 노래도 불렀는데 빔 벤더스의 영화 ‘욕망의 날개’에도 나온 포츠담 광장을 노래한 렘퍼가 작곡한 ‘베를린의 유령들’은 분단 조국을 가진 내 가슴을 슬프게 했다. 렘퍼는 청중들의 박수 성화에 자크 브렐의 샹송 ‘암스테르담‘ 등 2곡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카바레 노래는 가사와 음악이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음유풍이어서 한국의 판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환각적이요 열병을 앓는 것 같은 밤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