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는 수잔나를 사랑하고 알마비바 공작은 수잔나를 탐내고 공작부인은 틴에이저 시종 케루비노와 나이 먹은 닥터 바르톨로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그런데 피가로는 자기 어머니뻘인 마르첼리나의 사랑을 받고 케루비노는 정원사의 딸 바바리나의 사랑을 받는다. 복잡하네.
이렇게 사랑에 의해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 얼기설기 감긴 주인공들의 가슴의 매듭과 사연을 아름답고 고상한 음악으로 풀어놓은 것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다. 사랑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 그리고 오인된 신원과 용서와 참사랑의 승리를 얘기한 이 오페라는 어떻게 보면 섹스 풍자극이자 모차르트판 ‘양반전’이다.
모차르트의 최고 걸작이라 평가받고 있는 이 오페라의 대본은 모차르트의 또 다른 걸작들인 ‘돈 지오반니’와 ‘코지 판 투테’를 쓴 시인 로렌조 다 폰테가 썼지만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것이다. 당시 공연금지 딱지가 붙었을 정도로 정치적 성적으로 비판적이요 노골적이었는데 이는 하인 피가로가 주인 알마비바 공작을 갖고 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귀족계급의 허위와 허영과 위선 그리고 성적 방종을 야유한 내용은 당시 프랑스 혁명을 얼마 앞둔 시대상황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바람둥이 알마비바 공작이 피가로와 피가로의 약혼녀로 하녀인 수잔나의 술수에 의해 무릎을 끊는 모습이 처량할 지경이다.
보마르셰의 극을 흥미진진한 검술영화로 만든 것이 ‘혈투’(Scoramouche·1952)다. 스튜어트 그레인저, 멜 파라, 엘리노어 파커, 재넷 리 등이 공연한 이 영화는 검술영화의 백미라 부를만 하다.
‘피가로의 결혼’은 역시 보마르셰가 쓴 극이 원작인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의 속편이다. ‘피가로의 결혼’이 1786년에 초연됐고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1816년에 초연됐으니 선배가 속편을 작곡하고 후배가 전편을 작곡한 셈. 그래서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보고 ‘피가로의 결혼’을 보면 더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로시니의 오페라가 멜로디가 더 고운지는 몰라도 음악과 내용과 인물의 성격 개발의 깊이 있는 묘사에서는 모차르트를 따르지 못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피가로는 알마비바 공작의 막 심부름꾼이자 이발사였다. 피가로는 아직 총각인 주인과 로지나를 결합시켜 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올 때는 공작의 전속 하인으로 승격했다.
스페인 세빌리아 인근 공작의 저택서 벌어지는 이 사랑의 해프닝극의 재미있는 사실은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달리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점. 피가로는 간교할 정도로 지혜롭고 재치 있지만 정작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수잔나다. 수잔나의 총명함과 위트와 독립심에 비하면 피가로는 철이 덜든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수잔나의 기지로 인해 자신에게 초야권을 요구하던 플레이보이 공작은 아내 앞에서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게 된다.
LA 다운타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서 LA 오페라가 공연중인 ‘피가로의 결혼’은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독립곡으로도 잘 연주되는 서곡부터 경쾌했다. 나는 특히 수잔나 역의 미국 소프라노 바바라 바니의 모습과 노래를 보고 듣고 싶었다. 금발에 아담한 체구와 얼굴을 한 그녀의 음성은 약간 토실토실하면서도 영롱했다.
바니와 피가로 역의 러시안 베이스 일다르 아브드라자코프의 콤비도 좋았다. 부드러우면서도 극적인 음성이었는데 마지막의 달밤 정원 장면에서 손전등으로 객석을 비춰가며 “여자는 악마요 사이렌이요 여우요 마녀”라고 숨돌릴 사이 없이 노래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알마비바 공작 역의 베이스 데이빗 핏싱어와 공작부인 역의 소프라노 에이드리안 피에존카도 모두 준수한 음성이었는데 특히 피에존카의 자태와 노래가 품위가 있다. 케루비노 역의 메조소프라노 루시 샤우퍼가 맑고 고운 음성으로 부르는 ‘보이 케 사페테’(나를 슬프게 하는 이 감정이 무엇인가)는 휘파람으로도 부는 정다운 노래.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LA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나가노의 작별 지휘다. 그는 이 오페라를 끝으로 바바리아 주립 오페라와 몬트리올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직을 맡아 LA를 떠난다. 나가노는 동네 악단 수준의 LA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질을 부쩍 높여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가로의 결혼’은 4월15일까지 공연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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