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e-메일을 들여다보니 수백건의 정크메일 중에 ‘애견 웰빙 간식세트’라는 것이 눈에 띈다. 서울서 온 광고인데 아마도 올해가 개띠 해인 병술년이어서 나온 신상품인 것 같다. 전세계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판에 무슨 X같은 소리냐며 지워버렸다.
나도 중학생 때 애견(S라는 이름이었다)을 키우다 잃어버리고 대성통곡을 한 경험이 있지만 개에게 웰빙 간식을 먹이고 1,600달러짜리 루이 뷔통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은 내가 보기엔 개사치다. 한국에는 애견 작명소까지 생겼다고 한다.
옛날부터 ‘인간의 가장 충실한 친구’라며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을 받아온 개는 이제 단순한 애견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반려자로까지 지위가 격상됐다. 개 주인이 개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줄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이렇게 사랑하는 개를 욕을 하거나 남을 비하할 때 자주 쓴다. ‘개 같은 XX’라든지 ‘개보다 못한 자식’이 뭇 개를 슬프게 하는 말이요, 미국 남자들은 여자를 욕할 때 ‘비치’라고 내뱉는다. 그러니까 결국 개는 하나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어쨌든 개는 인간과 가장 친한 친구이자 표정까지 지을줄 알아 무성영화 시대부터 할리웃에서도 이 친구를 스크린에 자주 등장시켰었다.
개 배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린 틴 틴이다. 린 틴 틴은 1차 대전에 참전한 미군이 유럽전선의 참호에서 발견한 독일 셰퍼드로 미국에 입국한 뒤 할리웃에 진출, 많은 무성영화와 연속물(시리얼즈)에 나와 빅히트를 했었다. 린 틴 틴은 워너 브라더스를 먹여 살리다시피 했는데 그가 주연하는 영화의 각본은 후에 폭스의 명제작자가 된 대릴 F. 재눅이 전담해 썼을 정도였다. 영화에서 린 틴 틴의 이름은 인간 배우의 이름 위에 올랐었다.
또 다른 유명한 개 영화로 지금까지도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소녀 리즈 테일러가 나온 ‘래시 집에 돌아오다’(1943). 가난한 집의 애견이 남에게 팔렸다가 온갖 모험을 겪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얘기로 래시는 영국산 콜리. 이 영화는 최근 피터 오툴 주연의 리메이크로 만들어져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보다 덜 유명하지만 1930년대 스크루볼 로맨틱 코미디에 자주 나온 애스타도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저스틴 팀벌레이크 같은 인간 배우들보다 연기력이 훨씬 출중한 개 배우였다. 요크셔 테리어인 애스타는 ‘신 맨’ ‘엄청난 진실’ 및 ‘베이비 키우기’ 등에서 수퍼스타들인 윌리엄 파웰, 머나 로이, 케리 그랜트, 캐서린 헵번 및 아이린 던 등과 공연, 인간 연기를 빼앗아갈 정도였다.
개 영화 중에 가족용으로 즐겁기 짝이 없는 영화가 디즈니의 만화영화 ‘레이디와 뜨내기’(Lady and the Tramp·1955)다. 부잣집에서 버르장머리없이 자란 카커 스파니엘인 레이디와 무법자 스타일의 잡종 개 트램프의 모험과 사랑을 그렸는데 그림 좋고 얘기 좋다. 특히 ‘벨라 노테’와 ‘그는 뜨내기’ 및 ‘시아미즈 캣 송’ 같은 노래들이 아름답다. 최근 특집판 DVD가 나왔다(사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르듯 백악관의 개를 퍼스트 닥이라고 부른다. 미국 대통령들은 조지 워싱턴 때부터 개를 키워오는 전통을 지녔는데 워싱턴의 애견 이름은 벌칸이었다. 린든 존슨은 유키와 피도를 키웠는데 그가 개의 양쪽 귀를 두 손으로 잡고 공중에 들어올린 모습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애견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닉슨은 애견 체커스를 자기 변론연설에 써 국민의 동정을 샀고 부시의 애견 이름은 스팟인데 이 개는 부시의 아버지의 퍼스트 닥 밀리의 새끼로 1989년 백악관서 태어났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좋아해 브리짓 바르도 등 동물애호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고기 요리는 ‘개장국’ ‘사철탕’ ‘영양탕’이라는 이름으로 잘 팔리고 있다. 내가 서울 한국일보 사회부에 근무할 때 선배 중 한 사람이 개고기를 몹시 좋아해 툭하면 나보고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해 이를 피하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난다. 물론 식용과 애완용은 다르지만 개는 개다. 잡아먹을 때는 언제고 개띠 해라고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을 하다니 개들이 웃을 일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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