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985년 할리웃의 빅 스타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59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얼마전 자기와 몇편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공연한 도리스 데이와 TV뉴스에 나온 모습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헝크’라 불리던 신체 건강했던 미남 허드슨의 모습이 너무나 수척하고 초췌해 도저히 TV화면의 허드슨이 본인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 온 세상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허드슨은 그때 에이즈를 앓고 있었고 그는 TV에 나온지 얼마 안돼 사망했다. 허드슨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 에이즈의 가공할 위험을 공개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었다.
허드슨이 게이라는 사실은 그의 전성기인 1950년대부터 적어도 할리웃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개된 비밀이었다. 당시만 해도 스타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배우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드슨이 1955년 11월 자신이 속한 연예 대행회사의 작고 예쁘장한 여비서 필리스 게이츠(사진)와 결혼한 진짜 이유도 자신이 게이라는 소문을 막기 위해서였다. 허드슨은 당시 할리웃의 폭로 전문 연예지인 칸피덴셜에 의해 자신의 성애의 정체가 폭로되기 직전이었다.
물론 허드슨을 사랑한 게이츠는 남편이 게이인 줄을 몰랐었는데 이 결혼은 3년이 채 못가 끝나고 말았다. 게이츠는 그 뒤로 혼자 살았는데 지난 1월4일 LA 인근 항구도시 마리나 델 레이의 자택서 80세로 사망했다.
1950년대 활동한 빅 스타들 중에 또 다른 게이는 내가 좋아하는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탭 헌터가 있다. 물론 이들도 끝까지 자신의 성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져서 할리웃의 게이 영화인들 중 자신의 성적 기호를 밝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할리웃에는 ‘벽장’안에 숨어 있는 게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할리웃의 알려진 게이 스타들로는 엘렌 디제네리스, 앤 헤이치, 루퍼트 에버렛, 이안 매켈런 등이 있고 감독으로는 거스 밴 샌트와 클라이브 바커 그리고 얼마전 패라마운트에 팔린 드림웍스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빗 게펜도 게이다.
할리웃은 게이 세상이라고 해도 될만큼 게이들이 많은 곳이다. 나는 수년전 LA 영화비평가협회에 가입한 뒤 비로소 할리웃에 게이가 정말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게이는 할리웃뿐 아니라 세상 도처에서 이성애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게이 문제는 이제 한국의 고교에서도 심각해질 만큼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 대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자기와 성적 기호가 다르다고 해서 문둥병자 취급한다는 것은 타인의 인권과 인간성을 불인정하는 행위다.
지금 미국에서는 앙리 감독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때문에 게이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오는 3월5일의 오스카 시상식서 작품과 감독상 등을 탈 것이 확실한 이 영화는 두 게이 카우보이간의 20년간에 걸친 비밀의 러브스토리다.
할리웃은 과거 ‘오랜 친구’와 ‘필라델피아’ 및 ‘새장’ 같은 영화에서 게이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이들은 에이즈 드라마나 코미디였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주류영화 사상 처음으로 게이 연인들을 이성 연인들처럼 키스하고 섹스를 하는 보통 인간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지금 당장 세상과 할리웃의 게이에 대한 인식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앞으로 할리웃의 게이 묘사와 보통 미국인들의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올 촉매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뜻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 때문에 앞으로 헤테로 섹슈얼 배우들도 겁 안내고 동성애역을 맡을 것이며 관객들도 남의 눈치 안보고 게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요즘 시중담론의 인기 주제로 등장하면서 ‘브로크백’이라는 단어가 ‘여성적’인 것을 뜻하는 형용사로까지 쓰이게 됐다. 이 영화가 이렇게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게이에 대한 세인들의 관용의 리트머스 시험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상에 불관용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그런데 여러분들 ‘브로크백 마운틴’ 보셨는지요.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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