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마음놓고 사랑을 고백해도 된다는 밸런타인스 데이다. 이날 하루 꽃집과 초컬릿 가게는 대목을 볼 것이며 사랑이라는 단어가 전장에 떨어진 탄피들처럼 무수히 소모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 한 두어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은 사람들은 왜 나훈아가 ‘눈물의 씨앗’이라고 넋두리한 사랑에 그토록 매어 달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본래적으로 짧고 쉬 변질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원이라는 말은 단어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사실 무척 지루한 것이다. 사랑이 만약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어도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할 것인가.
언젠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봤다. 여기서 음향기술자인 상우(유지태)는 이혼 경험이 있는 지방 라디오방송의 PD 은수(이영애)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은수가 마음이 변하는 기미를 보이자 상우가 그녀를 찾아가 하소연한다. “사랑도 변하니”하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상우가 세상을 좀더 살아야 되겠구나’라고 생각 하면서 혼자 웃었다.
상우보다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연극배우로 나오는 경수(김상경)가 훨씬 더 사랑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기차 안에서 만난 유부녀 선영(추상미)이를 사랑하는데 둘이 여관방에 들어갔을 때 경수가 대뜸 선영에게 “우리 함께 죽을까”하고 제의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야 홍상수라는 친구 괜찮은 친구네” 하고 감탄했었다. 나는 원래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대사 하나 때문에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홍상수가 17일 하오 7시30분 UCLA의 제임스 브리지스 극장에서 상영되는 자신의 최신작 ‘극장전’ 소개차 참석한다).
사랑은 이렇게 죽던지 아니면 미치던지 해야 그 곁에나마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미친 사랑’(Amour fou)이라는 말도 있고 폴 앵카는 ‘크레이지 러브’하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랑은 마음의 율동이어서 노래로 얘기되지 않는 사랑은 연주되지 않은 악보와도 같다고 하겠다. 팝송이나 가요는 모두 러브 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말로는 엔카인데 우리가 잘 아는 ‘요코하마의 푸른 불빛’도 엔카다.
그런데 러브 송은 또 모두 ‘토치 송’이라고 해도 되겠다. ‘토치 송’이란 실연의 노래를 일컫는데 이것이 러브 송의 대종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사랑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토치 송’은 주로 여가수들이 부르는데 굉장히 감각적이다. 이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로는 에디트 피아프, 줄리 런던, 빌리 할러데이, 마를렌 디트릭, 페기 리 등이 있었고 요즘 가수 중에는 우테 렘퍼와 다이애나 크랄과 k.d. 랭이 이 노래를 잘 부른다.
팝송 중에는 러브자가 들어간 노래가 많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 레터멘의 ‘웬 아이 폴 인 러브’, 폴 앵카의 ‘퍼피 러브’, 서처스의 ‘러브 포션 넘버 나인’, 다이나 워싱턴의 ‘러브 레터즈’ 및 포 에이시스의 ‘러브 이즈 어 메니 스플렌도드 싱’이 모두 아름다운 러브 송들이다.
이런 노래들은 내가 어렸을 때 듣고 외워 이중 일부는 나의 애창곡들이기도 한데 난 특히 ‘러브 레터즈’를 좋아한다.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온 편지는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가깝게 있게 해주지요”라고 시작되는 노래는 제니퍼 존스와 조셉 카튼이 주연한 동명영화의(1945) 주제가로 빅터 영이 작곡했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제일 좋아하는 러브 송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제3막 맨 마지막에 이졸데가 부르는 장탄식의 토치 송 ‘사랑의 죽음’(Liebestod)이다. 이졸데는 이 노래를 부른 뒤 죽은 애인 트리스탄 위에 엎어져 죽는다. 또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제2막에 나오는 오타비오의 세레나데 ‘일 미오 테조로 인탄토’도 달콤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던 베토벤의 노래 ‘고운 사랑’도 곱다. 그리고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의 2악장 안단테는 가냘픈 여인 모습이다.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아 여러분께 노래 선물 하나 드리지요. 낙소스(Naxos)가 출반한 CD ‘퍼픽 로맨스’(Perfect Romance·사진). 리스트의 ‘한숨’과 ‘사랑의 꿈’,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들리브의 ‘꽃의 이중창’등 모두 15곡이 담겨 있다. 이 음반은 ‘퍼픽 웨딩’(Perfect Wedding)의 동반CD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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