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마련한 2005년도 각 부문 베스트를 위한 시상만찬이 17일 저녁 센추리시티의 팍 하이야트 호텔서 열렸다. 우리는 돈이 없어 칵테일은 딱 한 잔만 공짜지만 이 날은 모두들 평소 시사회 때와 달리 말끔히 차려입고 나와 약간 으스대는 모습들. 나는 여동생과 영화사업자인 미국인 친구 마이크를 손님으로 대동하고 참석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가 호텔 바에서 마티니를 마시는데 키다리 제프 대니얼스가 아내와 함께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한 뒤 “어제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의 당신을 TV로 봤다”고 말하자 대니얼스는 “그건 서커스였어. 진짜는 오늘 저녁이야”라고 답한다. 그는 우리가 최우수 각본상을 준 ‘오징어와 고래’의 주연배우로 이날 참석했다.
하오 6시부터 시작된 칵테일 아워에 인파로 붐비는 홀 안을 손에 칵테일 잔을 들고 어슬렁대다가 원로 성격배우 칼 말덴을 발견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오스카 조연상을 받고 또 아카데미위원장을 지낸 말덴(93)은 이날 생애업적상 수상자인 친구 리처드 위드마크를 대신해 나왔다.
나는 말덴의 손을 잡고 “만나서 영광입니다”고 인사했다. 나는 “소년시절부터 ‘교수목’등 웬만한 당신의 영화는 다 봤다”고 말하자 말덴은 “게리 쿠퍼”하고 마치 퀴즈 대답하듯 ‘교수목’에서 공연한 쿠퍼의 이름을 대더니 “넌 아직 아이야”라며 웃었다. 나는 이어 “당신은 ‘애꾸눈 잭’에서 아주 나빴어요”라고 말하자 “돈벌이인 걸 어쩌겠어”라고 대꾸했다. ‘워터프론트’에서 불같은 연기를 하던 이 코주부 배우가 백발이 된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한 위대한 배우를 앗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펐다.
말덴은 후에 건강상 이유로 코네티컷서 이곳까지 날아오지 못한 위드마크의 업적과 함께 그와의 형제와도 같은 오랜 우정을 회상, 기립박수를 받았다
‘브로크백 산’으로 감독상을 받으러 온 앙리와는 구면. 나는 칵테일장으로 들어서는 그에게 다가가 “벌써 세번째 만나는데 당신은 늙지도 않는다”고 추켜세우자 그는 자기 귀 위의 흰머리를 만지며 “안 늙다니 이것 봐”라며 웃는다. (사진).
앙리는 늘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에 조용하게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나는 “‘브로크백 산’ 만들 때 게이 카우보이간의 사랑이라는 주제 때문에 흥행성을 염려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앙리는 “저예산 영화로 아트 하우스용으로 생각해 흥행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면서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7시부터 시작된 만찬의 우리 테이블은 이 날 ‘카포티’로 남자주연상을 받은 필립 시모어 하프만의 형 등 ‘카포티’ 일당의 자리. 자다 일어난 모습의 하프만이 만찬장에 들어오면서 형과 포옹을 하기에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 “나 한국어 신문 코리아 타임스 영화비평가 H.J.인데 축하한다”고 말하니 “응, O.K. 만나 반갑다”고 답한다.
이날 제일 먼저 상을 받은 사람은 ‘그리즐리 맨’으로 기록영화상을 받은 독일 감독 베르너 헤르조크. 그는 “이미지 속에서 진실의 정의를 찾는 것이 기록영화로 나는 당신들의 도시서 살며 계속 이 작업을 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카포티’ 등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캐서린 키너 및 ‘오징어와 고래’의 각본가 노아 바움박 등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답사에서 “당신들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사해 기분이 괜찮았다. 또 앙리는 답사에서 “나는 꿈에 산다.그래서 나는 우리를 변형시키는 일을 하는 꿈인 영화를 만든다”면서 “함께 꿈을 꾸자”며 아름다운 말을 했다.
만찬이 끝나고 나는 하프만에게 찾아가 “당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이 웍트 하드”라고 답했다. 나가는 길에 만난 여우주연상(뼛속까지) 수상자인 베라 파미가에게 다가가 “우리가 당신 뽑아서 놀랬지”라고 물으니 “놀랬다”며 환하게 웃었다.
‘숨겨진’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미하엘 헤네케는 유럽서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리허설 때문에 불참했는데 대신 편지를 보내 “당신들 없으면 예술형태로서의 영화는 존재할 수 없으니 당신들과 나는 동반자”라고 말했다.
먹고 마시고 시끌벅적한 만찬은 장장 3시간40분이 걸렸다. 오스카 쇼 길다고 흉볼 일이 아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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